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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Apr 06. 2022

어머, 쥐가 있어

초등학교 선생님 중에 가장 만나고 싶은 선생님은 바로 3학년 담임 선생님이다. 나는 그때 조금씩 나 자신에게 궁금증이 생기는 나이였다. 국어 시간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속담을 배우고 학교 뒷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었다. 내가 태어난 지 10년, 강산이 변한다는데 나는 얼마나 변했나. 그때 나에게 10년은 굉장히 길었고 무척이나 많은 일이 떠올라 나름 오래 살았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후에 나는 어떻게 변할까 하는 궁금함도 생겼다.     


나의 3학년 선생님은 우리랑 참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 식목일 날이 되기 한참 전부터 ‘산에다 나무를 심자’라는 노래를 가르치며 나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셨다. 선생님은 식목일이 되면 집 근처 산에다 나무를 심을 거라고 해서 나도 부모님께 나무를 사 달라고 졸랐다. 나도 선생님처럼 산에 나무를 심으러 가고 싶었다.     


일, 이학년 선생님은 무척이나 멀고 어려운 분들이었다. 화장실에 가는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선생님들은 우리랑 다른 존재이고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다른 세계 사람 같았다. 특히 우리를 혼낼 때마다 선생님은 다 알고 있으니까 솔직히 말하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3학년 선생님은 달랐다. 결혼은 하셨는지 나이는 몇 살이었는지 몰랐지만, 선생님은 우리처럼 잘 웃었고,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고, 무서우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선생님은 얘기를 참 잘하셨다. 옛날이야기도 해 주셨지만, 주말에 선생님이 뭘 했는지, 읽은 책이나 영화 본 걸 아주 실감 나게 말해 주었다. 그럴 때 선생님 얼굴은 더 하얗고 동그랗고 예뻐 보였다. 다른 선생님들보다 조금 통통했는데 몸을 크게 움직이고 양손을 많이 쓰면서 말해 이야기에 더 빠져들었다.       


선생님은 우리 얘기도 잘 들어줬다. 우리끼리 뭐라고 얘기하면 선생님은 어느 틈에 다가와 어머, 그랬구나.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특히 감기 걸려서 마스크를 쓰거나, 다래끼 나서 안대를 하면 선생님은 꼭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기침이 나면 엄마한테 마스크를 사달라고 했고, 작은 상처라도 생기면 밴드를 붙이고 선생님 앞을 서성거렸다. 선생님이 다행히 알아보고 말을 걸면 기분이 아주 좋았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 학교에 갔을 때 친구들과 선생님이 무척 보고 싶었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면서부터 양손을 크게 흔들면서 반가워하셨다. 얘들아, 정말 오랜만이지? 방학 잘 지냈니?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 해가 뜬 것처럼 교실이 환해졌다. 우리가 모두 선생님을 바라보자, 선생님은 교실을 한 바퀴 돌면서 방학 동안 우리가 많이 컸고, 얼굴은 까매졌다고 했다. 그러고는 선생님 의자에 앉아 책상 서랍을 열더니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모두 선생님이 크게 다친 줄 알았다. 선생님은 부들부들 떨며 소리 질렀다. “어머 어머, 쥐가 있어.”     


선생님 책상 서랍에다 쥐가 새끼를 잔뜩 낳았다. 손가락보다 더 작은 쥐새끼들이 꼬물꼬물거렸다. 선생님은 쿵쾅거리며 교실 밖으로 나가서 학교 아저씨를 모시고 왔다. 선생님은 눈을 감고 입을 막으며 얼른 치워 달라고 했고, 우리도 선생님처럼 고개를 흔들며 징그러워했다. 학교 아저씨 눈에는 선생님과 우리가 똑같아 보였을 것 같았다.     


그때는 토요일도 학교에 가서 오전 수업을 했다. 선생님은 이번 주말에는 엄마 생신이라 직접 요리를 해서 생신상을 차릴 거라고 했다. 아마 월요일에는 어떻게 장을 보고, 무슨 음식을 만들었는지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 거 같았다. 평소에도 늘 하는 말이었지만, 그날은 유독 더 강조하며 선생님은 우리에게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효도하라고 당부했다. 아마 선생님 자기한테 다짐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 월요일, 학교에 간 우리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선생님이 다치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거였다. 우리 반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쩌면 좋냐고 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옆 반 선생님이 오셔서 담임 선생님은 많이 다친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엄마 생신날 미역국을 끓여 주려다가 뜨거운 걸 엎어서 화상을 입으셨단다. 아, 선생님의 하얀 피부에 상처가 나면 안 되는데.     


우리는 선생님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옆 반 선생님은 어리니까 너희들끼리 못 간다고 병원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미 열 살이고 강산이 변할 만한 나이를 먹었다는 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버스를 혼자 타 본 경험도 없고 병원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몰라 우리는 서로 눈치만 봤다. 그나마 반장이 나서서 자기가 알아 올 테니 몇 시에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 시간에 맞춰 나갔다. 나온 아이들이 여러 명 있었다. 반장은 선생님이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알아 왔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다행이라며 얼른 가자고 했다. 그런데 반장은 그 병원까지 몇 번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지, 선생님은 그 병원 몇 호실에 입원하고 있는지 몰랐다. 우리는 한참 동안 정류장 앞에 서서 의논했지만, 핸드폰도 없던 시기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한 두 명 집으로 가버리고 몇 명 남지 않았다. 우리는 선생님 오시면 버스 정류장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병문안 가려고 했던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선생님이 다시 오셨을 때, 우리는 선생님께 제일 먼저 그 얘기를 했다. 선생님은 깔깔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선생님 한쪽 팔은 붕대로 감겨 있었다. 선생님은 얼마나 아팠는지 화상을 당하면 절대 안 되는 거라며 미역국을 끓이는 장면부터 이야기해 주셨다.     


선생님을 보며 우리는 안심했다. 드디어 선생님이 오셨구나. 우리가 병문안은 못 갔지만 그래도 잘 회복하고 오신 게 정말 기뻤다. 선생님은 부모님께 엄청 혼이 났다면서 괜히 엄마 생신상 차리다가 불효만 저질렀다고 했다. 선생님도 우리처럼 부모님께 혼나다니 한편으로 놀랍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살, 나는 선생님과 지내는 일 년동안 어린아이에서 조금씩 소녀로 변한 것 같았다. 선생님의 삶을 우리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해 준 덕분이었다. 쥐를 무서워하고, 뜨거운 국에 데기도 하는 선생님은 우리에게 햇볕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어른이었다. 그렇게 가깝고 친근한 어른으로 다가온 3학년 선생님을 나는 무척이나 닮고 싶고,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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