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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Apr 13. 2022

나의 첫 피아노 선생님

나의 첫 피아노 선생님은 외할머니였다. 이북이 고향인 외할머니는 선교사에게 피아노를 배운 ‘가방끈이 긴’ 분이었다. 친할머니는 한글도 제대로 못 읽었는데 외할머니는 영어를 줄줄 읽으셨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 동네에서는 내 또래 아이들이 종일 뛰어놀았다. 유치원이나 학원 가는 애들은 거의 없었다. 다들 밥 먹고 나면 동네 공터에 모여 놀거나 뒷산에 가서 소꿉놀이했다. 

     

외할머니는 그런 나를 걱정하셨다. 나와 동갑인 이모 딸은 피아노를 얼마나 잘 치는데 나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놀러  다니냐며 못 마땅해하셨다. 그러고는 아버지에게 얼른 피아노를 가르치라고 하셨다.     


평소 장모님을 어렵게 여기던 아버지는 우리 집 형편이 어려운데도 무리해서 피아노를 샀다. 딸의 장래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외할머니 말에 홀라당 넘어간 것이다. 그 당시 피아노는 구경하기 힘든 악기였다. 우리 동네 이 집 저 집을 놀러 다녀도 피아노 있는 집은 없었다.      


동네 친구들은 우리 집에 피아노를 보러 왔다. TV도 없던 우리 집에 까맣고 반들거리는 커다란 피아노는 생뚱맞은 사치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보기만 하고, 치면 안 된다며 텃세를 부렸다. 아이들은 내 눈을 피해 건반을 ‘팅팅’ 눌렀고 나는 그걸 말리면서 괜히 어깨가 으쓱했었다.   

  

피아노를 못 치는 건 동네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나도 피아노를 어떻게 치는 건지 몰랐다. 처음 며칠은 마냥 신기하고 뿌듯했던 피아노가 금방 시들해졌다. 남동생들은 처음부터 피아노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피아노가 있건 말건 밖으로 놀러 나갔다.      


피아노를 사놓고 구경만 하자 외할머니는 몸이 달았나 보다. 우리 동네는 피아노 학원도 없고 레슨 할 선생님도 없다는 걸 안 외할머니는 직접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할머니와 첫 수업을 하기 전까지 나는 무척 신났다. 그게 어떤 일이고 앞으로 내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뭔가를 배우는 건 처음이었고 그때는 그냥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감만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 살던 외할머니는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 오셨다. 외할머니는 그때까지 나에게 참 멋진 분이었다. 유치원 원장, 피아노 개인 레슨 했던 외할머니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꼭 선물을 갖고 오셨다. 우린 초콜릿이나 과자를 무척 좋아했다. 외할머니는 마치 선생님처럼 동물 모양 비스킷을 한 주먹씩 나눠 주셨다. 나와 남동생들은 받자마자 과자를 세어봤는데 기가 막히게 늘 개수가 똑같았다. 나는 항상 정확하게 나눠 주는 할머니의 주먹에 놀랐다.      


피아노 첫 수업은 열쇠 구멍이 있는 자리에 바른 자세로 앉는 것부터 시작했다. 나는 ‘도레미파’ 소리 나는 게 신기했다. 내가 눌러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를 내주는 피아노는 참 멋진 악기라고 생각했다. 외할머니는 정확하게 하길 원했다. 달걀을 쥔 것처럼 손 모양을 둥글게 해라, 손톱이 아니라 손끝으로 건반을 누르면서 치고, 허리는 반듯하게 펴라고 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외할머니는 내가 제대로 칠 때는 무표정하게 아무 말이 없다가 건반을 잘 못 누르거나 악보를 제대로 못 볼 때는 번개같이 움직이셨다. 실로폰 채같이 동그란 걸로 내 이마를 ‘톡’ 하고 내리치셨다. “여기를 눌러야지, 이거잖아” 그제야 외할머니는 당신 할 일을 찾은 듯 동그란 채를 휘둘렀다.      


나는 억울했다. 동생들은 다 나가서 놀고, 친구들은 고무줄놀이하며 몰려다니는데 나는 혼자 이게 뭔가 싶었다. 남들이 안 하는 피아노 공부를 하면서 별똥별이 보일 정도로 ‘띵’하게 맞고 이마에 혹이나 생기다니.   

  

하기 싫었다. 피아노를 집어치우고 싶었다. 나는 엄마에게 이제 피아노를 그만 치겠다고 했다. 엄마는 피아노 치면 얼마나 좋은 줄 아냐며 나를 달랬다. 피아노를 잘 치면 학교 가서 음악 시간에 반주를 할 수도 있고, 교회 가서는 예배 반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외할머니한테 배우기 싫으니까 엄마가 가르쳐 달라고 했다. 엄마는 외할머니처럼 무섭고 정확한 선생님은 아닐 것 같았다. 처음에 엄마는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 내가 계속 조르자 엄마는 실은 피아노를 잘 못 친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그렇게 좋은 피아노를 엄마는 왜 안 배웠냐면서 나도 안 칠 거라고 징징거렸다.      


엄마가 외할머니께 얘기했는지 그 후로 이마를 ‘톡톡’ 때리는 건 많이 줄었다. 대신 이모 딸, 이원이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악보를 못 보다니, 이원이는 처음 보는 악보도 척척 치는데. 건반은 제대로 눌러야지, 이원이는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터치가 좋은데 원. 외할머니의 비교에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이종사촌이 원수처럼 미워졌다.     


오히려 그냥 이마를 한 대 맞는 게 더 나은 것 같았다. 할머니의 비교로 피아노에 대한 나의 첫사랑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난 이제 할머니가 오실 때가 되면 느낌으로 알았다. 엄마가 피아노 연습했냐고 묻고, 청소하면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외할머니가 집에서 기다린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더 늦게 들어갔다. 외할머니는 기다리다 지쳐서 가실 때도 있고, 작정하고 기다렸다가 늦게까지 가르쳐 주실 때도 있었다. 난 불량 학생, 아니 손녀였다.     


즐기면서 하라는 말은 다 커서야 들었다. 어릴 때 피아노 배울 때는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할 때가 많았다.

열 번 연습하라면 다섯 번만 하고, 쉰 번 하라면 서른 번만 하면서.      


피아노와 다시 화해한 것은 여기저기 전학 다니면서 외로울 때였다.

조용히 음악실에 있는 피아노를 치면 무심하던 아이들이 하나둘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같이 노래하고 연주하며 낯선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그러고도 한참 뒤에야 나는 알았다. 

나의 첫 피아노 선생님이 별똥별을 볼 정도로 어질어질하게 내 이마를 친 건  

당신 딸에게 피아노를 못 가르친 후회라는 걸

딸에게 못한 걸 딸의 딸에게 가르치려는 엄마의 사랑이란 걸    

 

많이 고마웠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멀미를 참아가며 먼 길을 온 나의 외할머니. 

내 옆에 꼿꼿하게 앉아 한음 한음 정확하게 알려 주신 분     

학교에서 아이들과 풍금을 치며 수업하고

지금도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를 하는 건

징징거리며 울고, 도망 다니던 나를 기다려준 

나의 첫 피아노 선생님, 외할머니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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