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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Jun 01. 2022

원미의 빈자리

  

원미는 학교 근처에 있는 시설에서 지내는 아이였다. 원미 부모님은 어린 나이에 원미를 낳고 기를 형편이 안되어 그곳에 맡겼다. 다른 부모들은 자주 자녀를 찾아오는데 원미 부모님은 찾아오지 않았다. 원미는 어릴 때부터 수 십 명의 아이들과 시설에서 살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대부분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하면 낯설어하고 수줍어하는데 원미는 안 그랬다. 처음 보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웃으면서 말을 잘 걸었다. 교실을 기웃거려 선생님이 무슨 일인가 하면 냉큼 그 교실로 들어갔다. 원미는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처음 만나는 선생님에게 “결혼하셨어요? 아기도 있어요?”하고 물었다.      


원미는  수업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학교에 있다가  돌아갔다. 일 학년들이  타는 차를 안 타고, 고학년들이 타는 차를 타고 가는 원미를 보며 외로워서 그런가, 학교에 있는 게 좋아서  그런가 했다.      


한 달쯤 지났을 때부터 일 학년 교실에서 자주 뭐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작은 물건들이라 잘 몰랐는데 여기저기서 학용품, 커피믹스, 사탕 등이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선생님이 잠깐 교실을 비웠을 때 선생님 지갑에서 돈이 없어졌다.     


학교에 도둑이 들었나 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도둑이라면 지갑을 통째 가져갔을 텐데 이상한 생각이 든 선생님은 교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이 전부 간 교실, 아이들 책상 위에 못 보던 물병이 보였다. 그것도 이름이 적힌 물병을 남겨놓고 간 것이다.

원미 물병이었다. 자기 이름 적힌 물병은 교실에 두고 간 원미를 불러서 물어보니 순순히 자기가 그랬다고 말했다.      


원미는 돈뿐만 아니라 그동안 여러 교실에서 없어진 것들을 가져갔다고 했다. 원미의 담임 선생님은 옆 반 선생님의 지갑에 손을 덴 원미 얘기를 듣고 무척 놀랐다. 담임 선생님이 원미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원미는 “먹고 싶은 걸 사 먹으려고 그랬다.”하고 대답했다.     


딸 둘을 키우는 엄마였던 담임 선생님은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원미에게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쓰던 분이었는데 그 일 이후로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주말을 함께 지내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의 딸들은 집에 온 원미를 동생처럼 챙기며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나도 일 학년을 맡을 때라 우리 반에 자주 들르는 원미와 얘기도 하고 간식을 챙겨 주기도 했다.   

  

한 번은 원미 담임 선생님과 같이 원미가 사는 시설을 찾아갔다. 그곳은 제법 규모가 커서 어린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있었다. 원장님, 총무님과 원미를 담당하는 복지사가 이모처럼 보살피고 있었다. 주말이나 어린이날 같은 특별한 날에는 놀이동산을 가거나 체험활동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원미의 허전함을 채울 수는 없었나 보다.     


조금 괜찮은가 싶으면 또 그런 일이 생겼고, 잠잠하다 싶으면 또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담임선생님은 시설의 담당 복지사와 면담을 하고, 전문가에게 심리치료도 받도록 했다. 그럴 때마다 원미는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얼마 동안은 괜찮았다.     


원미가  3학년 때 학교에 경찰관이 찾아왔다. 학교 안에서 교실 물건이나 선생님들 지갑에 손을 대던 원미는 이제 학교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원미는 학교 근처 슈퍼마켓에 가서 초콜릿을 훔쳐다가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길면 꼬리가 밟힌다고 여러 번 하다가 슈퍼 주인에게 걸린 것이다. 화가 난 주인은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관을 대동하고 학교까지 찾아왔다.     


원미는 경찰관이 무서웠는지 술술 다 이야기했다. 그동안 훔친 게 뭐고, 훔쳐서 어떻게 했는지 아주 자세히 말했다.     


원미는 그동안 훔친 물건을 자기만 아는 장소에 숨겨놓았다. 그 비밀 장소는 5층에 있었다. 학교에 큰 행사가 있을 때만 사용하는 5층 강당 옆 여자 화장실이었다. 여자 화장실 가장 안쪽에 있는 화장실 한 칸을 원미는 자신 만의 방처럼 꾸몄다. 거기다 교실에서 훔친 컵, 물병, 머리빗, 거울과 인형을 갖다 놓았다. 교사연구실에서 훔친 커피믹스, 녹차, 쿠키, 슈퍼에서 훔친 초콜릿은 보자기로 가려서 잘 안 보이게 숨겨 놓았다.     


가족과 한 번도 같이 살아 보지 못한 원미, 일 년 365일이 지나도 부모님을 만날 수 없는 원미는 늘 허전하고 외로웠나 보다. 채워지지 않은 그 허전함을 참을 수 없을 때 원미는 자꾸 남의 물건에 손을 대었나 보다. 그리고 그 물건을 차곡차곡 자신의 비밀장소에 채워 놓았다. 원미는 외로울 때마다 그곳에 갔고, 그 물건들은 허전하고 외로운 원미에게 위안이 되었나 보다.     


일 학년 담임 선생님은 지금도 원미를 가끔 만나고 원미 소식을 전해 준다. 나는 늘 미안한 마음으로 들을 뿐이다. 원미의 빈자리를 채워주기엔 그 아이의 결핍이 너무 크고 상처가 큰 걸 알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정말 미안하다. 원미는 자기 마음을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걸 몇 년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알기 때문이다. 원미 같은 아이들이 그 무거운 짐을 어떻게 지고 살아갈까 그게 참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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