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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May 07. 2022

가족놀이의 변화

-아들 대신 강아지, 딸 때신 이모~

교실에서 아이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게 무척 많다. 어젯밤 동네에 큰 불이 나서 소방차와 구급차가 온 거, 수십 년 버티던 동네 서점이 결국 문을 닫은 거, 주말에 학교 운동장에서 유치원 체육대회를 해서 솜사탕을 공짜로 먹은 거 등등. 더 비밀스러운 얘기도 들린다. 할아버지 댁에 갔는데 엄마가 돈을 받아야 한다고 일부러 허름한 옷을 입고 간 거, 아빠가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와 엄마와 싸우다가 텔레비전이 부서진 거를 스스럼없이 말한다.


아이들을 더 잘 알게 되는 건 역할 놀이를 할 때이다. 특히 가족 역할놀이를 할 때는 아이뿐 아니라 가족들의 모습도 알게 되어 혼자 막 웃을 때가 있다. 모둠별로 역할놀이를 하는데 여자와 남자가 각 2명이라 서로 엄마와 아빠를 하려고 경쟁이 치열하다. 가위바위보로 정하거나, 서로 의논을 해서 정하는데 엄마, 아빠, 딸과 아들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엄마를 맡은 아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초장부터 아빠를 맡은 아이에게 잔소리를 퍼붓는다.

“일어나, 회사 늦겠어. 얼른 일어나서 아침 먹어야지.”

“왜 이렇게 늦었어. 술을 잔뜩 먹고 오고, 정말 왜 그래!”

“씻어야지. 양치질도 하고!”


아빠인 아이는 목청만 우렁차다.

“회사 갔다 올게.”

“응응!”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고는 엄마인 아이는 모둠에서 제일 순둥순둥 한 아들 맡은 아이에게 콧소리를 낸다.

“어머나, 일어났네. 아침 먹자.”

엄마인 아이는 아들을 챙기고 밥을 차린다. 그러면서 아빠에게 또 잔소리를 한다.

“늦지 말고 일찍 와. 알았지?”

아빠인 아이는 센 엄마 아이 때문에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서둘러 회사에 출근한다.


엄마인 아이는 혼자 바쁘게 움직이면서 종알거렸다.

“못 살아. 여기도 이렇게 지저분하고, 저기도 지저분하고. 얼른 청소해야지.”

역할놀이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엄마다. 엄마인 아이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딸과 아들을 맡은 아이는 학교 가거나 엄마를 지켜본다. 이 역할극에서 주인공은 엄마였다.


내가 깜짝 놀란 모둠은 따로 있었다. 한 아이가 아들 하기 싫다면서 ‘강아지’를 하겠다고 했다. 아무리 반려동물인 강아지가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가족놀이에서 아들 대신 강아지를 하겠다니!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래, 넌 강아지 해. 이름은 뭘로 할래?” 강아지 맡은 아이가 이름을 ‘해피’로 하겠다고 하자 딸을 맡은 아이도 자기도 딸 대신 이모를 하겠단다. 그래서 그 모둠은 엄마, 아빠, 이모, 강아지가 사는 가족 놀이를 했다.


그 모둠의 주인공은 엄마가 아니라 강아지 해피였다. 시작부터 재롱을 부리며 여기저기 다니며 가족을 깨웠다. 강아지는 회사 가기 전 아빠와 놀고, 딸 대신 이모가 된 아이에게도 기어 다니며 애교를 부렸다. 엄마인 아이는 학교도 가지 않는 강아지 해피와 같이 놀아주고 산책을 하면서 신나 했다.


그러고 보니 실제 동네에서 눈에 띄게 강아지를 많이 만난다. 이제 유모차에서 나오는 강아지를 만나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유모차에 갓난아기가 있으면 깜짝 놀라 탄성이 나올 지경이다. 나는 그걸 보면서 ‘인구 절벽화’를 어느 정도 예상하게 되었다.


가끔 차를 운전하다가 앞차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표시를 보면 설마 아이가 맞겠지?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운전석 옆에 도도하게 앉아서 두리번거리는 견공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요즘은 가족놀이 역할극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아빠 역할을 맡으면 집에서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준비해 와서 회사에 가고, 엄마 역할을 맡으면 알아서 앞치마를 챙겨 왔다. 이제는 다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아이들도 알고 있다. 엄마 아빠를 맡은 아이가 다 같이 출근하고, 집안일도 같이 한다. 어떤 모둠은 엄마가 회사에 출근하고 아빠도 집에서 아이를 돌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양성평등교육과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교실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바라는 점이 있다. 가족역할놀이의 변화처럼 가정과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되어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 가정에서 미래세대의 주인공인 아기들이 많이 태어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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