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샘 Jun 19. 2022

돌멩이가 무섭대요!

고희가 소리치며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2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하는 소방훈련이었다. 학교에서는 학기별, 분기별 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교통안전, 화재, 지진 대피훈련, 소방 훈련 등등. 특히 소방훈련을 할 때 소방서에서 소방차가 오기도 하고, 안 오기도 하는데 그날은 소방차가 출동하여 운동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에서 미리 손수건을 준비하고 대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교 안내방송이 나오고 소방벨이 연속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제 줄을 서서 운동장으로 나가자고 말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자리에 앉아 귀를 막고 벌벌 떨고 있었다. 고희였다.      


고희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귀를 막고 울먹거렸다. 분명히 며칠 전부터 화재 대피훈련에 대해 알아보고, 방금 전 방송으로 안내까지 했는데 소용없었다. 내가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고희는 “악, 악” 소방벨처럼 고음으로 비명을 질러대며 책상 밑으로 숨었다.     


“작년에도 그랬어요.”

“원래 고희는 자주 이래요.”

작년에 고희와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말해주었다. 고희가 비명을 지르면서 우는 바람에 우리 반만 대피를 못하고 교실에 남아 있었다. 나는 책상 밑으로 숨은 고희에게 다가가 선생님과 같이 운동장으로 가자고 했다. 고희는 내 손을 꼭 잡고 훌쩍거리며 가고, 우리 반 아이들은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낮은 자세로 대피했다.  

    

우리 반은 제일 마지막으로 운동장으로 나갔다. 과학실 쪽에서 연기가 나서 그쪽을 피해 신발도 갈아 신지 않고 서둘러 학교 건물을 빠져나갔다. 우리가 운동장에 도착하자, 대기하던 소방차는 주황빛 연막탄 연기가 자욱한 과학실 쪽에 소방호스로 물을 뿌렸다. 소방호스에서 나온 세찬 물줄기는 금방 과학실의 불을 끄더니 일부러 하늘 높이 물을 발사했다. 운동장에 대피했던 전교생은 높이 솟는 물줄기를 보고 ‘와’ 감탄을 했다. 

     

대피훈련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오자 고희는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천둥 번개가 치면 고희는 또 소리를 지르며 무서워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고희를 조심스럽게 살피었다.     


수업 끝나고 학교를 한 바퀴 돌다가 학교 근처 놀이터에서 고희가 혼자 놀고 있는 걸 봤다. 나는 왜 혼자 놀고 있냐고 물었더니 “아까까지 친구들이랑 놀았는데 먼저 갔어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혼자서 놀면 무섭지 않냐고 했더니 고희는 아주 당당하게 “하나도 안 무서워요.” 하는 게 아닌가!    

 

고희가 겁이 많고 무서움을 많이 타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고희는 놀이터에서 모래를 열심히 파헤치더니 접시 깨진 사금파리를 보여줬다. 

“선생님, 이거 무슨 문 같지 않아요?”

“무슨 문?”

“이게 학교 운동장에 있었거든요. 제가 발견했는데 땅속으로 들어가는 문 같아요.”

고희는 지난번에 찾아낸 사금파리와 비슷한 조각을 더 찾고 있다고 했다. 그런 고희는 소방 벨소리에 울던 모습과는 아주 많이 달라 보였다.      


나는 그동안 고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슬그머니 꺼냈다.

“네가 지난번에 소방 벨소리에 비명을 지르고 울어서 걱정을 많이 했어.”

고희는 입술을 깨물며 뭔가 생각하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저는 소리가 무서워요. 큰소리 나는 거랑, 사이렌 소리 나는 거.”


문득 나도 고희만큼 어렸을 적 일이 생각났다. 

“선생님도 어렸을 때 너처럼 무서운 게 있었는데.”

“뭔데요?” 고희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육교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육교를 건너가려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어. 엄마나 아빠랑 같이 건너면 참을 수 있는데 혼자 건너는 건 너무너무 무서운 거야. 한 번은 용기를 내서 혼자 지나가려고 육교 중간쯤 갔거든. 그런데 발이 안 떨어지더라. 갑자기 육교가 내려앉아서 내가 떨어질 것만 같았어. 그래서 다시 내려가서 횡단보도까지 한참을 돌아서 갔지. 육교가 정말 정말 무서웠어.”


고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소리만 무서워요. 다른 건 안 무서워요. 육교도 잘 건너고요. 놀이터에서도 친구랑 놀다가 다 가도 혼자 놀 수도 있어요.”

고희는 히죽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지금도 육교 건너는 거 무서워요?”

“아니, 지금은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건너. 가끔 어렸을 때 무서워한 건 기억나지만.”    

 

고희는 소리가 무섭고, 나는 육교가 무서웠다. 어떤 아이는 깜깜한 밤이 무섭고, 귀신이나 도깨비가 무섭다고 한다. 무서운 게 다 있나 보다. 어른이 되면 육교는 안 무서운데, 대신 병이나 이별이 무섭다. 어른이 되어도 무서운 건 있는 것 같다.           


며칠 후, 공부를 시작하려는데 고희의 책가방에서 주먹 만한 돌멩이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고희는 교과서를 꺼내려다 같이 따라 나온 돌멩이를 후다닥 다시 집어넣었다.

“고희야, 그 돌은 뭐니?”

“흠, 제가 놀이터에서 노는데 무섭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요.”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돌멩이가 무섭다고 했다고? 그래서 데리고 왔다고?’

고희 책가방을 슬쩍 보았더니 작은 돌멩이도 여럿 있었다. 고희는 소리에 무서워하는 마음 때문에 돌멩이의 무서움을 품어주는 너그러움을 갖게 되었나 보다.      


2학기에 하는 소방훈련에서 고희가 달라졌다. 얼굴을 찡그리며 귀만 막았다. 지난번처럼 비명을 지르며 울까 봐 나는 얼른 다가가서 손을 잡았더니 고희가 말했다.

“이제는 시끄럽긴 하지만 참을 수 있어요. 절대로 무서워하는 건 아니에요.”     


고희는 돌멩이의 무서움을 품어주느라 한동안 책가방에 돌을 넣고 다녔다. 생각해 보니 나도 육교가 무서워서 나보다 한참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육교를 건넜던 기억이 난다. 동생이 아무렇지 않게 육교를 건너는 걸 보고 나도 덜 무서워했던 것 같다. 마치 고희가 사금파리와 돌멩이로 안정감을 느낀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원미의 빈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