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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May 09. 2023

엄마의 동치미 사랑

  노랗고 빨간 나뭇잎들이 꽃잎처럼 흩날리는 가을이었다. 오랜만에 여든이 넘은 엄마를 모시고 식사하러 갔다. 단풍 든 산기슭에 기대어 있는 오래된 식당이었다. 

  식당 뒷마당에서 아주머니들이 황금빛 배추를 쩍쩍 반으로 갈라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몇 명은 한 손으로 들기도 어려운 무를 자르고 무청은 정성스레 줄에 꿰고 있었다.


  오후 5시, 휴식 시간을 막 지난 때라 엄마와 나는 첫 번째로 식당에 들어섰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곳이었다. 작년에 무릎 수술을 한 엄마는 다리를 구부리고 펴는 걸 힘들어하셨다. 오랜만에 외출이라고 엄마는 발목 부츠를 신었는데 혼자 벗지 못해 내가 신발을 벗겨 드렸다. 육십 대에도 통통한 다리로 씩씩하게 직장을 다녔던 엄마는 요즘은 훈장 같은 수술 자국을 간직한 채 집 근처만 겨우 다닌다. 


  식당은 절반은 좌식이고 절반은 입식이었다. 우리는 의자가 있는 곳에 가서 앉았고, 뒤에 오는 손님들도 모두 의자가 있는 식탁에 몰려와 앉았다. 식당들이 앞다투어 입식으로 바꾸는 이유가 있었다. 


  생선구이가 맛있다고 소문난 곳이라 우리도 생선구이 2인분을 주문했다. 밑반찬으로 나온 음식들은 손맛이 있고 정갈해서 내 입맛에는 괜찮았는데 엄마는 무덤덤하게 잡수셨다. 솔직히 엄마는 바깥 음식을 못마땅해한다. 집에서 오물 쪼물 나물을 무치고, 불고기를 볶고, 된장국을 끓여서 먹는 걸 좋아한다. 여든이 되기 전 엄마는 장어구이를 하거나 한 냄비에 십만 원이 넘을 법한 해물탕을 끓이거나, 대하구이를 준비해서 집에서 가족 모임을 했다. 아들과 손자 손녀들은 그때 장어구이와 해물탕 맛이 식당보다 더 맛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딸과 며느리가 엄마 뒤를 이을 생각이 없어 요즘은 식당에서 가족 모임을 하고 있다. 엄마의 무덤덤함은 딸에 대한 무언의 시위일 수도 있다.


  바싹 구운 생선구이가 느끼해서 그랬는지 엄마는 갑자기 동치미를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눈치 없게 가운데 있던 물김치를 엄마 앞쪽에 놓아 드렸다. 엄마는 그것 말고 엄마가 직접 만든 동치미가 생각난다고 했다. 엄마가 직접 김장할 때는 동치미를 꼭 담갔다. 별 재료 없이 무와 소금과 물만 들어간 동치미는 엄마 손맛이 살아나는 우리 집 별미였다. 머리가 어지럽거나 소화가 안 된다고 하면 엄마는 동치미 한 사발을 마시라고 했는데 시원하고 속이 확 뚫리는 듯했다. 


  갑작스러운 동치미 소환에 나는 무척이나 난감했다. 너도나도 김치를 사 먹는 세상에 직접 담근 동치미라니! 엄마가 김장을 못 하게 되자, 혼자 사는 시어머님과 엄마 김장까지 내가 챙겨 드리고 있다. 김치를 사 먹을까 하다가 아무래도 입맛이 까다로운 분들이라 주말농장을 하는 친구와 함께 직접 김장해서 갖다 드린다. 


  직장 다니면서 해마다 김장하는 게 쉬운 게 아니란 걸 뻔히 아는 엄마가 이제 동치미까지 해달라는 건가? 참 기가 막혔다. 엄마는 “동치미 담그는 게 얼마나 쉬운데, 금방 하는데.” 하며 나를 슬금슬금 쳐다보았다. 내가 엄마의 동치미 비법을 물려받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아, 이럴 때 엄마가 아니라 계모 같다. 


  하긴 엄마의 동치미 사랑은 유별나다. 이북이 고향인 엄마는 음식에 대한 향수를 꼭 동치미로 시작했다. 엄마 어릴 적 길고 추운 겨울밤, 배가 출출해서 징징거리면 외할머니는 “우리 냉면 해 먹을까?” 하며 순식간에 면을 삶아 동치미 국물에 말아왔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고 했다. 동치미 뒤에는 꼭 냉면에 대한 향수가 뒤따라왔다. 언젠가 평양냉면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 식당이 있다고 해서 엄마와 같이 가서 먹은 적이 있다. 맵지도 달지도 않아 이게 무슨 맛인가 해서 “엄마, 이건 아니지?” 했는데 엄마는 “바로, 이 맛이야!” 하며 국물까지 말끔히 잡수셨다. 그때 나는 알았다. 엄마의 입맛은 내가 절대 따라갈 수 없다는 걸. 맑은 국물인 듯 깊고 담백한 맛을 나는 아무리 해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리 수술을 해서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 걷고 신발을 혼자 벗지도 못하면서도 엄마의 마음은 아직도 밤에 일어나 동치미 냉면을 먹던 어린아이인가 보다. 

  나는 엄마에게 동치미를 사서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엄마는 무슨 소리냐, 담그면 돈도 얼마 안 들고 만들기도 쉽다고 했다. 무엇보다 엄마가 직접 담가야 그 맛이 난다고 했다. 아, 정말 엄마 기분을 맞추어드리기 어렵다. 


  혼자서 김장을 척척 하던 엄마, 결혼한 딸네 집에 와서 이불 빨래와 고추장 담그기를 하루 만에 해치우고 별일 아니란 듯 훌훌 당신 집으로 가시던 엄마가 변했다. 나는 동치미 때문에 끙끙 앓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하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울컥했다. 


  “알았어, 언제 가면 되는데?” 나는 눈을 흘기면서 물었다. 엄마는 반가워하기는커녕 “하면 지금이 딱 좋은데. 이번 주에는 해야 하는데.” 웬일인지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엄마는 한참 있다가 “그냥 안 먹으련다. 엄두가 안 나서.” 했다. 


  엄마는 공들여 딸을 설득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엄마 자신을 설득하는 건 실패했나 보다.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다는 걸 엄마도 배워가는 중인가 보다. 나도 그런 엄마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안타까운 표를 내지 않는다.


  “누가 엄마가 만든 동치미를 대신해 줄 수 있겠어요?”

  내 말에 엄마는 그냥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개성 한정식집을 차릴 만한 엄마의 음식솜씨도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엄마가 만든 만둣국, 떡국, 백김치, 오이지, 말린 가지와 호박으로 만든 반찬들. 이제는 그 맛들이 잊히고 엄마만 당신 자신의 손맛을 기억하고 있나 보다. 


  “아, 동치미 그거 만들기 참 쉬운데.”

  엄마의 말에는 많은 여운이 들어있었다. 동치미는 젊은 날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큰 살림을 하고 수백 포기 김장과 무김치와 동치미를 하루 동안 뚝딱뚝딱 해치우던 엄마는 이제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엄마와의 저녁 식사는 동치미에 대한 아쉬움만 남기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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