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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민 Jun 07. 2023

수선유지급여의 한계

"모든 사람은 자기 경험의 포로이다.

편견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편견의 존재를 인정할 뿐이다."  

에드워드 머로, 아나운서



 비가 개어서 약간은 화창한 날, 깐깐하게 목청 높여 따져 묻는 수급자 어르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디 도망갈 수 없는 괴로움이 엄습한다. 어제는 폭우가 쏟아진 날이었고 어르신은 비가 새는 집이 말도 할 수 없을 만치 살기 어렵다며 주거복지를 제공하고 있는 담당 부서를 쥐잡듯이 탓한다.      


 언제나처럼 긍정마인드로 직진하는 나는 그동안의 일들은 모르겠고 마치 내가 보면 해결될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담당직원과 아파트 호실을 찾아갔다. 5층 건물 중 4층 계단 옆 호실에 있는 어르신을 만나서 아파트 내부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집 안 내부가 벽지마다 곰팡이가 피고, 갈라진 곳은 더 진하게 빗자국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여기서 어떻게 사셨어요? 하고 물으며 이제까지 도움의 손길이나 요청한 것을 들었다. 누수의 문제니까 아파트 하나의 호실에서만 해결해서 끝날 문제는 아니기에 위층과 옥상을 가보자고 했다. 다행히 위층은 전에 확인해 보니 바닥에 비가 새는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옥상을 같이 올라갔다. 약간은 푹신하게 누수방지를 위해 페인트와 방수소재를 깔아뒀으나 오래되어 군데군데 갈라지고 깨져있어 틈이 많이 보였다. 또한 외벽에도 금이 간 곳과 벌어져 있는 곳들이 보였다.


 아! 개별 호실의 문제라기보다는 외벽과 옥상에 대한 방수공사를 선행해야 누수를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이 집이 그동안 미해결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었구나! 하고서 공동주택부분은 자가를 가진 수급자를 위한 수선유지급여로서 7년에 한번 하는 대보수공사를 해 줄 수는 없음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차라리 다른 주거지를 찾아서 월세살이를 하시면 월임차료 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말씀도 드렸지만 원하지 않으신다.

어르신은 안타깝게도 바로 자신의 위쪽 옥상부분만 방수공사를 해 줄 수는 없느냐고 하소연하신다. 어휴, 참 답이 없다.     


 부서로 돌아와서 건축과를 통해 해당지역 도시재생사업의 지원여부를 알아보았다. 옥상과 외벽 방수공사를 위해 1억을 배정해 두었는데 10% 자부담 조건이 달려있다고 한다. 그런데 주민들이 의사를 모으고 펀딩도 함께 해야하는데 마음이 모이질 않는다. 몇차례 주민회의가 있었으나 답보상태를 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말도 안되는 방법이라도 있을까하고 자활기업인 집수리업체를 방문하여 상담해 보았다. 2년을 최대로 잡고 시트지를 바르고 터진 곳을 이어붙이고 최대한 물의 침투를 지연시켜보는 방법을 권한다. 곧, 당장 곰팡이진 벽지와 벽체를 청소하고 닦고 시트지와 벽지를 발라서 우선 땜질을 해서 얼마 동안이라도 생활하는 편의를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였다.     


 말씀을 드리려고 재방문하는 날, 비는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빗물이 벽을 타고 흐르고 링거 물 떨어지듯 방울방울 떨어져 양동이에 담긴다. 아이코 이를 어쩌나 하구서 답이 아닌 어쩌면 대안도 아닌 시트지와 벽지공사를 제안한다.     


 어르신은 원론적으로 말도 안되는 쓸데없는 공사라고 하시고 거절의사를 분명히 하신다. 더 이상의 방법이 없으니 그러면 벽지공사하는 자원봉사단체를 연결해서 우선 낡은 것이라도 걷어내자고 해도 말씀이 없으시다. 아무런 결정사항 없이 철수하였다.     


 그럼에도 계속 민원을 제기하셔서 긴급주거보수사항으로 LH(토지주택공사)에 요청하면서 앞서 제안한 시트지와 벽지공사 정도로 설득하고 설득하여 합의하여 공문을 접수했다.

 그런데 막상 대보수공사를 상담하는 LH직원에게는 원칙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전반적인 방수를 요청하신다. 도돌이표로 공사 진행을 할 수 없다고 통보받았다.     


 이후 어르신은 국회의원 사무실, 청와대, 신문사, 방송국을 통해 연이은 진정을 넣었다. 모든 민원에 대해 그간의 경과 과정을 설명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안타까움을 소통하였다. 국회의원 비서관이 구청으로 찾아와서 면담하고 민원 서류가 중앙에서 내려와 답변서류를 준비하고 언론사 기자들과 통화하며 길고 길었던 해명작업은 종료되었다.


 그 후 6개월 이상 아무런 말이 없었는데, 급기야 폭우가 내린 다음 날 구청장실로 민원이 들어왔고 하루 종일 과로 청장실로 전화가 불이 났었다. 지자체 단체장에게 있는 권한으로 해결될 사안은 아닌데 70통 이상의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비서실에서 일과를 마친 후 한 시간 가까이 하루 동안을 복기하여 자초지종을 풀어가면서 이해를 구했다는 후문이었다.     


 수급자 중 자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지원하는 수선유지급여는 월임차료를 받는 사람들의 지원액을 몇 년치 누적해서 지급받는 금액의 60~70% 정도임으로 수급세대 간의 형평성 논란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장에서는 지역여건 상 슬럼화되고 방치된 공간, 자력의 힘이 부족한 지역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곤란에 대해서는 주거급여 외에 다른 정책적인 접근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주거의 열악함을 목도하고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담당자의 마음, 분명 오래되고 낡고 생활할 수 없는 조건임에도 어떠한 방도가 없어 낙담하는 수급자의 심정이 장마가 얼마 남지 않게 다가오는 즈음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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