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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민 Jun 16. 2023

편한 사이

"같이 걸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처럼 우리 삶에 따스한 것은 없다."

이정하, 시인

    


 선배를 만난 지 어느덧 23년이 되었다. 만남은 공무원직장협의회에서 시작되어 공무원노동조합 시기로 계속 이어졌다. 나는 대의원에서 인권복지부장으로 또 지부장에서 본부장으로 역할을 넓혀갔다. 선배는 사무국장에서 지부장 그리고 본부장을 거쳐 중앙조직의 부위원장까지 부담을 안아갔다.      


 노동조합 간부의 역할을 뒤로 하고 한 구청에서 선후배 편하게 얘기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온 지가 꽤 된 것 같다. 못해도 5년은 이어진 시간을 뒤돌아보게 된다.      


 이번 달 말이면 선배는 실질적으로 공직사회를 떠나게 된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관계를 통해 전국의 현장을 다닌 경험을 통해 남다른 통찰을 들어왔던 시간들이 행복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편안한 사이, 좋은 관계란 무엇일까? 삶의 가치와 각자가 가진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사이와 관계망이 있다는 건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지 알 수 없다.     


 직책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책임져야 하고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비상식적으로 전개된 시기들이 있었다. 자주적인 노동자들의 결사 자유를 유교적 권위 질서로 자본의 논리로 막아버리는 답답한 사회 주류의 압박을 온몸으로 감당했던 시공간의 추억을 함께 했었다.


 나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막막했던 현장을 더 많이 경험하셨으니 노동권으로 싸우는 사람들의 힘듦을 더 이해하시리라 생각된다.      


 매달 만나서 하는 것이라곤 밥 먹고 차 한잔 하는 것이 전부이다. 떠나는 시점이 다가올수록 청춘을 바친 직장의 아름다운 시절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미뤄 짐작하고 그 곳을 한번더 찾아갈 수 있도록 나는 애쓴다.      


 공무원으로 입사한 시절 청사가 있었던 곳 주변도 생각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도 있었을 노포를 상상한다. 그런 식당에 가면 마치 주인처럼 격의 없이 자연스레 자리에 녹아들어 집밥을 들 듯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진다. 지나온 한 달을 돌이켜 서로의 삶을 나누고 꼰대로서 함께 후배들의 삶을 평하는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나누고 라떼는 말이야를 입에 올린다.     


 식대와 차대의 부담은 격월로 더치페이를 해왔다. 두 달에 한번 그 시간에 있는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것이다. 맛집을 찾기를 좋아하는 내가 식당과 카페를 추천하지만 결정은 열어놓고서 선배와 만난다.     


 시류에 휩쓸려가는 것이 인생사라고 하지만 때때로 나라 걱정을 하며 무엇이 옳을지 방송과 유튜브, 각종 단행본 등을 재료로 얘기를 나눠본다. 또한 같이 생활하고 있는 공직사회인 구청 내부의 일들도 하나씩 나눠본다. 걱정이나 토론이 무엇 하나 쉽게 반영되거나 변화를 만들어낼 리가 만무하지만 말이다.     


 관내 지역을 돌면서 쉼을 줄 만한 카페도 두루 섭렵하면서 마음의 풍요를 얻고 업무에 복귀하는 한 텀의 주기는 아쉽기도 하고 뿌듯한 시간이기도 했다.     


 한번은 승진 욕심에 대한 의견을 여줘봤다. 선배는 그것에 너무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해야 할 말을 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승진에 얽매이면서 스스로를 더 옥죄는 것이 삶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게도 직장의 종착역을 향해가는 시간, 같은 공간에서 허물없이 내 것을 내놓고 공감받고 걱정해 줄 사람이 귀한 즈음에서 선배를 보내는 마음이 짠하다.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선배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보름 정도 남아있는 시간 후배들과 함께 선배를 잘 보내드리려고 마음 먹는다. 일선의 공무원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의미있고 보람차게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그리고 일터에서 동료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했던 그 마음을 다시 반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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