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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민 May 25. 2023

지금, 여기

“스스로 바다가 되지 않으면 날마다 뱃멀미를 앓을 것이다.”

레너드 노먼 코언, 싱어송라이터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1980년 대학가요제 6인조 그룹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라는 곡의 첫 부분이다.

 열정을 쏟아붓고서 허탈한 느낌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한 문장을 찾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분야 우수지자체 대통령 표창(기관포상)을 수상한 이후 인사에 있어 보상을 기대하였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더 열악해지는 내부환경을 보면서 바닥이 꺼지는 한숨을 내려놓는다.     


 소수직렬로서 심사승진에 있어 후순위로 고려되는 상대적 박탈감이 마음 속에서 가시지 않았다. 상위 직급 복수직렬 배치에 있어서의 검토논의도 부정적으로 진행되면서 오히려 직렬 전체에 대한 견제로 이어졌다. 그리 많지 않은 직렬인원에서 상위직급 승진에 이은 후배로까지 연결되는 승진릴레이가 멈추며 계속된 적체의 현실이 속을 편하게 가질 수 없게 만들었다.     


 승진의결이 발표되고 한 달여를 지나 위장병이 생기고 허리가 꺾이는 느낌을 두 달 이상 받았다. 구토 증세가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속을 긁는 듯 할퀴는 듯 아파서 자다 깨다 뒤척이다 병원 약 처방을 받고 한 달 정도 투약하고서 어느덧 위장의 안정은 찾게 되었다.     


 삶은 계속되고 있고 여전히 언어적 폭력를 행사하는 사람들과 물리적 폭행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지급받은 급여와 관련하여 근거가 제시됨에도 수용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자신의 방향으로 해결을 주장하고 몇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하루 걸러 방문한다. 분노조절에 장애를 가진 사람의 경우는 상담 초기부터 자신의 성향을 그대로 표출하고 그에 대비하도록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각자의 위치에서 긴장감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으면 몰려드는 민원들에 대해 원활하게 받아내고 여과하여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문하면서 하루의 일과를 다시 생각했다.     


 먼저 아침 식사부터 새롭게 바꿔나갔다. 속에 편한 음식이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귀리죽을 매일 먹는 것으로 정해서 아침을 챙겨 먹고 있다.

 또한 간단한 체조를 통해 몸을 깨우고 음식을 먹으면서 성가곡을 듣고 마음을 정돈한다.     

 동일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근을 하지만 다시금 성서를 읽고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를 드리는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유튜브나 SNS에 빼앗겼던 시선을 옮겨 매주 한 권 정도의 독서를 하면서 출퇴근 길에 새로운 자극으로 흡수한다.     

 정시 출근보다 한 시간 이상 빠르게 도착한 사무실에서 공람문서를 쭉 훑어보고 해야 할 것들을 구상해본다. 일찍 출근한 직원들과 함께 부서와 관련된 이야기를 조용조용 나누기도 한다. 머리에 이런저런 불쾌한 기억과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떠올리기보다 그냥 당면한 과제를 생각해 보고 그것에 대응하면서 부담을 덜어내려고 한다.     

 오늘 있을 행사나 회의에 조금 더 정성을 담아 준비해 보자. 무엇에 대한 상을 만들어놓고 희비 교차나 기대보다 마땅히 되어야 할 것들만 생각하고 대비하자. 이렇게 생각하며 지내다 보면 오전 업무시간은 그냥 흘러간다.     


 작년 원제 스님이 지은 세계일주여행기인 ‘다만 나로 살뿐’에서 스님은 ‘결코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사는 삶을 주장하셨다. 무엇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경계한 것이었다. 성서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시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으니, 욕심이 들어설 공간이 없어 보인다.      


 직장인으로서 나의 가족을 위한 이해관계와 소수직렬의 희망이 존재하지만, 마음을 추스리고  자연스레 업무상의 보상을 마치 선물로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욕심으로 인해 발생했던 감정들, 이해관계와 얽힌 사람들에게 갖는 미움과 분노를 해소해 나가기로 하였다.     


 예전부터 잘해 나가던 일들, 조직 내 봉사활동, 후배들을 챙기는 일들,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일들이 다시금 하나씩 눈에 들어오고 있다. 함께 신앙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직원들, 업무 과로로 힘들어하는 부서 직원들을 차분히 바라본다. 하소연과 고충을 듣고 함께 의논하면서 딱히 해결이 아니더라도 이 시기를 견딜 힘을 갖기를 소원한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쓸데없는 망상이나 로드맵을 생각하기보다 맡은 바 해야 할 것들을 챙겨나가자. 그 속에서 동료 간의 갈등과 감정적 힘듦을 만들기보다 서로 사랑하며 생활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이번 달은 뭐 별 일도 없었지만 후배들과 저녁 자리를 더치페이로 함께 했다. 주제 없는 모임이 좋은 모임인 것을 함께 한 사람들이 다들 느끼는 시간이었다.     

 지금, 여기가 집중해야 할 시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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