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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민 Jan 10. 2022

나에게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새롭게 만나는 일상이다.

 “새로운 경험으로 확장된 마음은 결코 과거의 차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올리버 웬들 홈스, 의사


 2000년 10월 1일 시행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사회복지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았다. 시혜에서 권리로 구호에서 보장으로의 변화는 주민들의 의식을 탈바꿈시켰다. 공무원에게 당당히 요구하고 때로는 더 소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자신을 옹호하였다. 복지현장에서 동정심이나 또는 열정으로 대상자를 개조시키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또 다른 벽을 만났을 수도 있다. 권리는 당사자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그 속에서는 거쳐야하는 과정을 밟고 있었다.


 외환위기와 함께 시작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몰려오는 취약계층을 맞아 숨 가쁘게 일을 처리해 갈 수 밖에 없었다. 과거처럼 밀린 일들을 내가 적절히 통제하면서 수행할 수도 없었다. 민원은 이제 접수되고 일련의 업무 흐름에 따라 진행되어야 했다. 그래서 강원지역에서 폭설이 나서 재난업무에 치중되다가 밀려있던 몇 백 세대의 기초보장 민원접수는 감사에 의뢰되고 소명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또 한편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과거보다 훨씬 더 전산환경에 매이게 되었다. 모든 것이 전산화되었다고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은 어느 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고립된 사무환경이 아니었다. 국가주도의 보장체계가 완비된 것이다. 마치 디지털 파놉티콘(원형감옥)에서 언제든 잘못이 적발될 수 있는 통제체제에 들어가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파악된 자료들을 확인하라고 내려 보내고 디테일한 확인과 조정으로 마무리되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보면 이게 미세한 막노동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꿋꿋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목과 어깨, 척추에 상당한 무리를 주면서 장시간 모니터와 다퉈야 한다.


 그렇다고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마치 내근하는 직렬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기초보장은 움직이는 생물처럼 항상 변동되는 자료들이 나타난다. 부정수급과 관련된 취업과 퇴사, 일용노동의 문제, 결혼과 이혼 등의 가족관계등록 문제, 전출입과 비거주의 문제 등이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오가는 사례들을 본다.


 무엇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상황에서 자주 티걱태걱하는 마찰이 생기고 때로는 격렬한 충돌도 벌어진다. 석유 말통을 들고 불을 지르겠다는 사람이나 과도를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사람, 자신을 피해 거주지를 옮긴 사람들을 찾아내라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 알콜중독에 찌든 사람, 조현병에도 약도 먹지 않고 와서 자신들의 얘기만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내려앉는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경찰을 부르기도 하지만 근무자들이 원하는 시점에는 거의 동료들 외에는 방어막이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버티다 보면 평온한 일상도 찾아오지만 절박한 상황에는 마음의 여유를 찾기 쉽지 않다.


 사무실에서 가만히 민원을 대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가장 닮고 싶은 모델은 능글능글한 스타일이다. 민원인들을 원만하게 자신의 화를 누그러뜨리고 대화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마주하기란 쉽지 않은 미션이다. 돌부처가 되어 유연하게 평정을 유지하고 맞대응을 하는 것은 실무에서는 엄청난 내공이 쌓이지 않고는 오를 수 없는 경지다.


 이제 시행된 지 20주년을 맞이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주민들을 만나는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복지공무원에게도 제도와 지침, 그리고 자주하는 질문과 같이 일정패턴의 민원은 돌아서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어떻게 기초생활보장이란 일상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것이 당면한 과제이다. 나의 평정심을 헤치지 않고 일상을 건강한 긴장 감각으로 영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위해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나의 행복을 빼앗기지 않게 된다.


 몸의 건강을 돌보려면 자신에 맞는 운동이 필요할 것이다. 스트레칭이든 복싱이든 요가든 걷기나 뛰기든 무엇이든지 무리하지 않고 실천할 방법을 써야 한다. “움직임이 힘이다”라는 운동심리학자 캘리 맥고니걸의 글이 있었다. 마음은 몸의 회복에 따른 호르몬 작용의 도움으로 온전함을 이루게 된다.


 소진에 빠진 마음은 어떻게 하면 될까?


 딱히 정신과 주치의가 대기되어 있지도 않은 현실에서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방어기제를 맞춤하여 챙겨야 한다. 마음 챙김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해신, 하지현, 전현수, 김상준 정신과의사의 책이나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토닥거리며 성장시킬 수 있다. 최진석, 김용옥, 강신주 등과 같은 인문학자들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도 있다. 또는 김주환 교수의 강의와 같은 명상이나 기도의 시간, 마음공부를 통해서도 각자가 화를 격동시키는 경계를 발견하고 다스릴 방향을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앞으로도 나와 함께 할 것이다. 항상 같이 할 대상이라면 더 긍정하고 수용하면서 함께 살아갈 방도를 고민할 수밖에 없으리라. 덮으면 종결이라는 말처럼  쌓아두지 말고 퇴근하면 잊고 출근하면 다시 생각하듯 마음에 여유와 휴식을 취했으면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이제 성년이 되었다. 무엇이든 성년이 되면 자율성과 주도성이 더욱 생기기 마련이다. 제도의 성숙으로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더 건강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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