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세민 Jan 10. 2022

사다리를 오르는 길은 누구나에게 분명해야 한다.

"정의가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명백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행해지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은 단지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중요합니다."

고든 휴어트, 판사


 노동자에게 임금은 가장 중요한 경제적 유인이다. 공무원노동자에게는 임금투쟁이 거의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황에서 가장 큰 임금인상은 승진임용을 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직급을 오르는 사다리의 계단은 많은 사연들과 다툼의 소지를 낳는다.


 2002년 여름 구청에서는 구청장의 최측근이 상당히 많은 선배들을 제치고 청장의 승진의결을 차지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6개월만 늦추자는 말들이 있었지만 수용하지 않아 그대로 결정은 나버렸다. 연차가 높았던 선배들의 원성이 높아, 설립되고 한참 힘을 받고 있던 노동조합은 공정성의 문제와 측근 발탁의 문제를 가지고 천막농성을 벌이게 되었다.


 한달여간의 농성이 있는 동안, 지부 임원들은 매일같이 조합원을 조직하여 일정규모로 규탄하는 일들을 진행하고 구청집행부와도 협상하였다. 여름철이어서 날씨로 인한 문제는 없었지만 계속되는 노숙으로 쉽지 않은 나날들이 이어졌다. 마지막에 가서는 구청장의 자택 앞에서 규탄하는 활동을 전개하며 주민들의 설왕설래가 이어지면서 발탁인사에 대한 후속대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타결안은 타구로 승진한 당사자를 전보하는 것이었다. 막상 구청과 노동조합이 합의안을 조인하였지만 승진한 사람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은 어려웠다. 지부간의 논의를 통해 가능성을 타진하여 수용한 지부의 구청으로 제법 시간을 끌었던 전보발령이 울렸다. 승진은 막을 수 없었지만, 조합원들의 이후 박탈감은 보이는 공간에서 사라졌다. 이후 당시 승진했던 그 분은 타구로 옮겨가서 오랜 기간이 흘렀으나 더 이상 올라서진 못했다고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지부 내에서는 하나의 거울이 되어 동일한 일이 반복될 경우 상당한 진통과 숙고를 하게 되었고 적절한 내부 소통과정을 밟게 되었다. 한 사람이 튀어나와서 앞지르려고 하면 소문이 나고 노동조합에서 대응하게 되면서 일일이 승진후보자들의 순번을 체크하여 예방활동을 벌이게 된 것이다.


 2002년에서 멀어질수록 다시금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게 되었다. 2017년말 구청마당에 천막이 세워지고 농성은 하게 되었지만 채 3일 만에 합의에 도달했다.


 이렇듯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발탁승진이 공감받고 인정받기 힘든 부분은 성과산출에 있어서 공정성을 객관적으로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광역자치단체와 같이 규모가 큰 조직에서는 국간에 있어서 수량화되는 성과수치를 얻기 쉬운 반면 기초자치단체에 있어서는 지원부서와 현장부서가 한 눈에 들어오는 상황이며 양적평가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2003년 나는 전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현재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사회복지직공무원들의 모임)의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2000년 별정직 사회복지전문요원에서 일반직 사회복지직 공무원으로 전직하며 정원조정을 할 때 나는 한 직급 강등하여 임용되었다. 동일한 업무를 계속하면서 일어난 일이기에 조속한 회복을 바랐지만 희망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고 시간은 흘러갔다.


 2003년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의 염원을 담아 전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전행연)에서는 강등자문제해결부를 신설하여 문제해결을 추진하였다. 나는 이 부서에 책임을 맡고 뛰어들었다. 제주에서 전남과 부산 양방향으로 전국 지자체를 돌며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 문제해결을 위한 단결과 지역차원에서 이슈화를 요청하였다. 한달여를 거치면서 국회에서 해단식을 하며 정치권과 중앙정부에 건의하였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풀리지 않아 복지직 공무원 개개인이 다음 검색엔진에서 사회복지직 강등자를 검색어로 조회하여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게 하였다. 또한 청와대 직속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5,400여명의 문제해결을 바라는 연서명으로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결정회의를 앞두고 2박 3일의 수련회를 하면서 전행연 임원들은 가상회의를 진행하여 행정안전부 대응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였고 결국 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행정안전부에서는 구제 권고지침을 지자체에 내렸다. 이를 토대로 각 지자체에서는 강등되었던 사람들의 직급을 회복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꿈은 허황될 수 있으나 모두가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한다. 어려움은 나누고 함께 고민하다보면 고통의 현실은 변화되는 것이다.


 공무원 사회에 입직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평등하지는 않다. 직렬에 따라 업무환경에서 느끼는 마음은 다들 다르다. 소수직렬에게 있어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유리천장의 고통은 더욱 남다르다.


 이런 현실에서 부산지역본부에서는 보직과 직급을 구분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승진을 하지만 보직은 주지 않는 방안이다. 조직이 경직되고 고령화되면서 승진이 과거보다 더욱 어렵게 되었다. 그 속에서 소수직렬은 더더욱 상위직급은 생각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2011년부터 전체 직원비율에서 6급 정원을 늘려가는 방안을 각 구청 집행부에 건의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요청하였다. 강한 지부를 필두로 한군데씩 수용하면서 1년에 걸친 작업이 완료되고 6급 정원은 1%씩 전 구군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동일한 방식으로 격년에 한번씩 정원비율을 계속 높여가게 되었다. 비록 중간관리자로서의 위상은 갖지 못하더라도 경제적인 보상은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조직과 연계된 부분외에는 직급상승이 어려웠던 소수직렬에게도 비율조정시 일정부분을 할당할 수 있어서 숨통을 튀울 수 있게 되었다.


 한편 7년 전후로 시작된 신규직원들의 빠른 승진소요년수는 특히 소수직렬 공무원들에게 아픔을 주었다. 직렬에 따라 두배의 격차가 벌어지는 일도 생겨났다. 뒤늦게 이런 문제를 공감하고 대처한 지부들에서는 전체 정원에서 수용하여 함께 8급 승진을 내 주었으나 이러한 변화는 빨리 전 지부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서서히 전파되고 공감대를 얻어가는 과정에서 조직에 더 이상은 기대할 것이 없다며 떠나 버린 조합원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점점 9급에서 8급으로 승진시에는 그 폭이 대체로 줄어들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불만과 고통받는 현장문제로부터 조직된다. 당장 힘들고 어려워도 문제를 담고 되새김하다보면 풀어야 하는 가닥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공무원사회에 들어와서 인정과 자신의 발전이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승진의 사다리는 모두에게 분명한 정도로 보여야 한다. 소외와 배제가 작동하는 공간은 결코 통합이나 단결을 이끌어 낼 수 없다.


 단체장만 바라보는 성과보다 구정 전체에 대한 기여를 보게 하는 방향전환, 직렬간에도 서로 내부에서 공감하는 배려, 각 주체가 자신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려고 자신을 세워가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은 움직여 나가야한다. 그런 토양에서 건강한 조합원들이 만들어지고 희망있는 지부가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새롭게 만나는 일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