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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한량 Nov 06. 2024

불안도 꿰어내면 보배다.

 ”이 나이에 사무소 들어가서 허드렛일을하고 싶진 않습니다.“

국립공원에서 자연 해설과 생태관광 프로그램 기획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 담당자의 업무 지원을 위해 자연환경해설사 서무를 사무소에 배치하려는 데서 대립각이 있었다. 

올해 서무를 시작한 중년의 그녀는 단호했다. 

사무소 서무 지원을 받기 위해 해설사 단톡방에 올린 글에 그녀는 강하게 반발했다. 

마치 사무소 입성은 그녀의 몫인 것처럼 여겨졌나 보다. 

그녀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심리상담사와 처음 전화상담을 시작한 것도 그 직후였다.      

10명의 해설사들을 상대하는 상황은 매번 달랐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다. 

상사의 지시와 외부 돌발변수를 해설사들에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이해시키거나 때로는 설득해야 하는 과정이 늘 따라다녔다. 

문제는 해설사들의 반감이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고나서다. 

회의하기에 앞서 충분한 자료와 논거들을 가지고 들어간다. 

애매한 일들과 민감한 주제일 때는 서류와 준비시간이 더 많아지거나 길어진다.

      

어느 날부터인지 출근하면서 해설사실을 바라보다가 사무실로 들어가는 버릇이 생겼다. 

사무실 입구에 들어서면 왼편에 해설사실이 있고 오른편에는 사무실이 있다. 

힐끗 왼편을 돌아보면서 ’오늘은 누가 출근했지? 오늘 전달해야 할 일이 뭐였더라?‘

그렇게 하루의 시작을 살핀다. 미리 상황을 예보하듯 상기시킨다.        




오래전 심리검사에서 관계의 두려움이 크다는 결과를 받은 적이 있다. 

이미 내적 자원이 충분한데도 필요 이상의 두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해설사뿐만 아니라 친근한 이들에게는 종종 장난치듯 농을 건넨다. 

상황을 부드럽게 가려는 것도 있지만 장난을 좋아하는 천성적인 나의 기질 탓이기도 하다. 

당시 서무였던 그녀의 반발은 정당한 자신의 권리였음에도 

내가 만만해서 그렇게 성토를 한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불과 작년까지 같이 근무한 이 모 과장이 생각났다. 

사람은 좋지만, 업무의 가르마를 타주지 못하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만만히 봤던 내가 떠올랐다. 

과장은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있었다. 

마냥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아내의 말을 다시 되새긴다.  

    




이해받기 위해 상대에게 자세한 정보를 설명해 주려는 나

해설사들에게 담당으로서 인정받으려는 나

손 내민 제안에 혹시 반감이 생기지는 않을지 늘 안테나를 세운다. 

무의식에 깔린 어둠은 내 에너지를 야금야금 먹어댔다. 

아침에 일어나면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막상 닥치면 별일이 아니었던 게 대부분이었다. 


전화로 심리상담사와 통화하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내 주변에서 늘 서성대던 불안은 성장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는 것을.... 잘하고 싶었고, 

어제보다 나아지기를 바랐다. 

부족한 게 있으면 신경이 쓰이고 문제가 터지면 내 탓인가 싶어 재보기도 했다. 

나는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나의 길을 줄곧 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줘야 유능한 담당자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도 눈치를 보면서 충돌과 자극을 받지 않으려 몸을 사리기도 했다. 

나는 그 역할 속에 잠겨있었다. 

인정을 받으며 이상적인 담당자로 자리매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직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내 에너지가 받쳐주지 못하니 현실과 괴리감이 생기고 위축됐다. 

궁극적인 내 모습을 그리지만 현실은 빈약하다.      



어찌 보면 일을 제외하면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상관하는 나는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일까?

 누군가와 맞서면 불편하고 그게 심하면 속앓이도 하는 민감한 사람이다. 

하지만 상대는 내 인생의 깊이를 더해주는 선인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내가 성장하는 데 오히려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며칠 전 그림자 워크숍 수업 중에 들은 말이 생각난다.

”욕구와 두려움은 한 세트에요“

성장의 욕구 반대편에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내가 있었다. 

사회적 역할 속에서 인정받고 싶은 담당자와 성장하고 싶은 개인으로서의 나 말이다.       

더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니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길게 구슬을 늘어뜨려 보니 어떻게 꿰어야 할지 궁리한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바늘 코에 실을 묶고 하나하나 구멍에 맞춰 이어 나갔다. 

심리 상담사님의 말과 그림자 워크숍 리더님의 말이 무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배는 하나의 실로 꿰어진다.      


밀쳐뒀던 불안, 걱정, 두려움이라는 어둠의 키워드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역학관계가 드러났다. 

하나의 점에서 시작된 연결점은 각 지점에서 통찰로 번득인다. 

그렇게 선을 이어가면서 하나의 통로를 만들어주니 각각의 연결점은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키워드들이 서로 연결이 되면 더 이상 어둠의 단어가 아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어둠은 동시에 긍정을 품고 있다 꿰어내는 사람이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관건이다. 

그 상황에 이르면 ’어둠‘과’긍정‘이라고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다. 

어둠이 곧 긍정이 되고 긍정이 어둠이 될 수 있는 여지를 품고 있다. 

하지만 결국 빛과 어둠은 서로를 보완하는 연결고리로 한 몸이 된다.    



그래서 접점과 균형은 중요하다. 일로써 접하는 나의 한계를 먼저 직시한다. 

나는 에너지도 낮고 대화의 기술도 부족하다. 

다만 상대를 전제로 하는 표현 기술을 숙달시키되 나의 마음을 담는다. 


하는 척만 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담되 내 그릇을 넘어서는 공감은 자제한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 하는 당위에 집착하기보다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안달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움직인다.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고 한발씩 떼어 밟아가는 거다.     


키를 훌쩍 넘기는 철봉 앞에 선적이 있다. 도움닫기를 해서 한 번에 매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내딛는 발과 팔을 쭉 뻗는 동작의 자기암시에만 충실할 일이다. 

그 이후는 이미 내 영역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바라보는 지향점을 잊지는 말자. 

양쪽의 끈을 모두 놓지 않는 끈기만 가지고 있자. 

버팀과 끈기가 또 나의 전공이 아닌가? 

그렇게 한 단계씩 성장하는 나를 지지해 주자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의 길대로 나의 방식대로 그리고 나의 속도로 가자 사람의 성장이 아니라 

식물이 생장하듯이 생애주기에 맞는 나의 속도로 생장하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교감과 소통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글을 쓰는 이 순간에 갑자기 울컥해진다.

지난 일주일 동안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과 마음으로 일과 삶에 임하고 있는지 이리저리 재보고 돌려보고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기나긴 시간 동안 불안을 아니 나를 놓지 않고 미로의 출구를 통과할 실마리 하나를 찾은 듯 

찰나의 기쁨이 밀물로 밀려온다.      


처음의 심리검사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자 

이미 내 안에는 나를 지지해 줄 내적 자원이 풍부하다. 

내 안의 자원들이 질서정연하게 재배열되면서 어떻게 나아갈지를 알려준다. 

서두르지 않고 생장의 속도를 믿어보자      

버팀과 인내가 나를 뒤에서 받쳐주고 이상이라는 몽상가적 기질이 긍정의 힘으로 

나의 방향을 저 앞 북극성처럼 비춰주고 있지 않는가? 



삶은 달곰씁쓸하다. 

그렇다고 달콤함에 취하지도 씁쓸함에 절망하지도 않는다. 

살다 보면 달콤함이 좋을 때도 씁쓸함에 몸서리를 칠 수도 있다. 

그 안에 열망과 그리움이 내가 갈 길에 지치지 않는 동력을 공급해 준다. 

잠시 방황해도 길을 잃어도 두려움에 나를 모두 내어주지 말자 

내가 나를 인도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실체를 알고 있으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출처를 알고 어떻게 생겼고 어떤 놈인지 상대의 정체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길게 늘어뜨렸던 구슬은 단순한 흑과 백이지만 이미 흑인지 백인지 알수없는 광채를 뿜어내고 있다. 

오색찬란한 생동감으로 무장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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