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선한량 Oct 24. 2024

기대와 실망이 나를 부를때

인정과 사랑에 대한 숨겨진 갈망이 나를 드러낼때

'되도록 느끼지 말아야 할 감정, 서운함'

남인숙 작가의 '어른 수업'의 챕터 중 내게 들어온 목차다.     

'서운함' 낯설지 않은 단어다. 

직장 동료 직원에게 서운함을 내비치자 돌아온 몇 마디의 잔상이 떠오른다.

"000 계장처럼 무소의 뿔로 혼자서 가세요"

"그렇게 서운해하면 직장 생활 못해요"     


국립공원에서 생태관광과 자연해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현장 운영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자연환경해설사들이 현장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같이 기획하고 운영 여건을 살피면서 

사업을 진행한다.     

사무 일과 현장 일이 동시에 잘 이뤄져야 공단 탐방 정책도 잘 이행하고 성과도 내면서 한 해 농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다. 가끔 내 깜냥껏 그들을 도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달리 생각하는 거 같다. 

소장의 업무 지시나 불가피한 외부 변수가 터졌을 때, 

아이디어를 요청했을 때 피드백이 없는 경우가 왕왕 있다. 

회의 시간에 침묵을 지키는가 하면 방어적인 태도로 기운을 빼는 이들도 있다.     


남작가는 서운함을 느낄 때는 상대보다 자신을 돌아보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로 3가지를 제안했는데 남 일 같지 않다.


1. 시야가 좁아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있지는 않나요?

2. 자아가 너무 약한 상태 아닌가요?

3. 지나치게 관계 의존적인 것은 아닌가요?     


자기중심적인 기질이 강한 나는 생각과 감정에 집중해서 상황을 살피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작년 업무차 출장을 갈 때 친구를 만난다는 이유로 해설사들과 따로 이동했다. 

내 딴에는 '담당이 혼자 가는데 연락조차도 없네?‘라며 투덜거렸다. 

다음날 행사장에서 만나자마자 한 해설사는 

“계장님! 담당자가 해설사들 잘 도착했는지 연락도 없고 그래도 되는 거예요?"라며 눈에 쌍심지를 켠다. 

아차 싶었다. 난 내 입장과 상황에 만 매몰되어 있었던 거다. 




내향형에 예민한 성격인 나는 충전을 이유로 혼자 시간을 종종 보낸다. 

나이도 들면서 관계망도 좁아졌다. 

곰곰이 세 가지 이유를 훑다 보니 내가 보였다. 

자기중심적이고 약하고 의존적인 나는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내 입장에서 부족한 게 느껴지면 

내 안에서는 익숙한 뭔가가 고개를 쳐든다.     


그럴 때면 내 안을 들여다볼 일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들을 무작정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해설사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회의 시간에 침묵을 지키는 것은 생각이 없어서 일수도 있지만 귀찮기도 하고, 

정말 아이디어가 없어서 일수도 있다. 

자신들 일하기도 벅찬데 다른 일을 만들어오는 담당자가 못마땅할 수도 있었을 거다. 

거기에다가 종종 일을 부탁하기도 했으니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때는 내 판단과 감정에 확신이 없어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운함'을 택하기도 한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서운함'을 느낀다는 것은 내게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결국은 '결핍'이다. 내가 배려해 준 만큼 해설사들이 인정해 주길 바라고, 

내가 생각해 준 만큼 그가 또는 그녀가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자리한다. 

작가의 3가지 제안은 묘하게 나를 겨냥하고 있다.


서운함은 나의 결핍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에게 집중하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더불어 안으로만 침몰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게 하는 독려의 감정이기도 하다.     


본질은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데 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갈구하는 욕구가 쉽사리 떨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을 자로 재듯이 따질 게 아니라 부족한 자신도 건강한 애정으로 채워주는 게 필요하다.

 ’아 내게는 지금 뭔가 부족하구나 누군가 나를 채워주길 바라고 있구나‘     


결국 나로서 홀로 서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거나 감정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애매해지면 피어오르는 감정이 서운함이다.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고 관심을 주게 되면 남에게 거는 기대도 생기지 않는다. 친절을 베풀어도 받아도 되지 않을 만큼만 주는 관계가 적정하다고 저자는 주문한다.     


그간 자신을 잘 다독인 줄만 알았지 나를 마주 보는 상대를 놓치고 있었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데 남을 돌아볼 여유가 있단 말인가? 

내 안으로 집중하되 매몰되지 않고 남을 살피되 의존하지 않는 균형의 묘미가 필요한 이유이다. 

자신을 사랑해서 서운함을 느끼는 것도 타인을 볼줄 모르는 나도 역시 나이기 때문이다.       

.     

작가의 이전글 나는 왜 그 무언가를 초월하는 사람이고 싶은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