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봉사하며 살고 싶은데 말이죠
뚜루루 뚜루루-딸깍
“네 안녕하세요~ 여기 OO인데요~ 사장님 이번 달은 체납액 납부 얼마 가능하시죠?”
“사장님. 이번에도 납부 안 하셨네요. 경기가 어려운 건 알고 있지만 저희도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어서요. 얼마라도 납부 부탁드립니다.”
“아 사장님! 매달마다 약속만 하시고 납부를 안 하면 안 되죠! 저는 사장님 해달라는 대로 기다려드리고 압류해제도 해드리고 하는데 이러시면 저도 방법이 없네요. 죄송하지만 이번엔 압류 들어갑니다.”
“사장님. 압류된 주택 공매로 넘겨야 할 상황인데 어떻게 할까요. 분납 좀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건 사채업자의 전화가 아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2금융권 채권추심 부서로 갔어야 했나. 전화를 하면 나 혼자서 화를 냈다가 구슬렸다가 짜증을 냈다가 심각하게 말하다가 난리부르스다. 1인 모노드라마가 따로 없다. 조용하고 소심한 나는 어쩌다 출근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사나운 사자가 되었나.
차라리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호화 생활을 누리는데도 고액 체납액을 납부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좋으련만. 어떻게 내가 관리하는 사람들은 죄다 사업에 실패해서 힘겨운 사람들뿐이다. 아, 내가 이분들에게 순진하게 속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체납 독촉을 하기 전에 내가 사업장에 직접 찾아가 일을 거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과연 이 일을 내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체납액을 많이 거둬들일 수 있긴 있는 걸까? 마른걸레를 쥐어짜내고 있는 것 같다. 이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길래 이 지경까지 왔을까. 이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일까, 불쌍한 사람들일까? 위에서는 더 거둬들이라고 쪼아대고 밑에서는 힘들어 죽겠다고 난리다. 그 사이에 끼여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동정에 호소하는 그들에게 측은지심이 들 때도 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배신감에 치를 떨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의 요구사항을 전부 들어줄 수 없다. 나는 결국 체납 징수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지, 그들의 힘든 사정을 듣고 봐주기 위하여 월급 받는 게 아니니까. 어떻게 보면 어려운 사정에서도 세금을 열심히 내는 성실사업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위해서라도, 오늘도 마음을 굳게 먹고 압류를 해야 한다. 착한 마음 이런 거는 여기서 쓸데없다. 그냥 알파고처럼 기계적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나는 NGO에서 활동하고 봉사하면서 살고 싶은 게 꿈이었는데 어쩌다 이다지도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면서 갈등을 하고 있는지. 내가 이 일을 열심히 할수록 누군가를 과연 이롭게 하긴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