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너한테도 매겨볼까?
블라인드 어플을 삭제했다. 다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가입했는데 그곳에서 영양가 있는 글들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특히, 정부•공공기관 라운지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회사 등급 관련 이야기는, 수능 치고 점수에 맞춰 살아온 사람들에게 뿌리 깊게 박혀버린 순위 매기기 뇌구조를 본 것처럼 불편했다.
우리는 고3까지 수능만을 위하여 공부하며 달려왔다.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첫 번째 순간, 거대한 배치표를 펼쳐 성적에 맞는 대학교를 선택한다. 그때부터였다. 모든 순간마다 내가 속한 조직에 등급을 먼저 매긴 후 그 등급으로 나를 평가하게 된 순간의 시작이.
그 후, 그들은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듀오에서나 볼 법한 회사 등급표를 자진해서 들이민다. 수능 컷에 따른 대학 서열화를 끝으로 순위 매기기는 사라진 줄 알았는데. 어느샌가 점수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훈련된 그들은 ‘회사 수능’도 치지 않았는데 회사 등급표를 자진해서 만들고 서로 구분하기 바쁘다. 회사 순위를 나누고 ‘나는 여기, 너는 여기’ 서로 그 등급에 자기 자신을 맞추어버린다.
회사 등급표를 보며 누구는 우쭐해하고 누구는 자조를 하고 누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SKY를 목표로 수능 공부를 했던 고등학생처럼 최고 순위의 직장을 가고 싶어 하고 다른 직장들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 속에 자기에 대한 고려는 없다. 우리가 적성보다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의 성향 따위는 고이 접어두고 데자뷔를 보는 듯 직장 배치표를 펼치고 저울질한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기준이 아닌 남의 기준에 따라서, 본인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하여 누군지도 모를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평가를 애타게 갈구한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뉴스에서 이미 봐왔다. 대기업, 이름 난 공사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 회사의 이미지처럼 다들 청렴하고 멋진 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전문직이라도 자신의 성향과 안 맞으면 그저 안 어울리는 옷을 입고 트루먼쇼를 하고 있을 뿐이며, 남들이 좋다 하는 공기업에 다녀도 그 속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A등급이 무슨 소용일까. 우린 수능을 끝으로 서로 다른 인생을 선택하여 살아간다. 직장도 직업도 각양각색이고 자신이 선택한 길에 만족하면 그뿐인데 왜 또 등급을 나누는 걸까.
대학생 시절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보다 대학 간판에 기대어 남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또 누군가를 평가했던 것처럼, 또다시 직장 이름에 기대어 사람들을 구분 짓는구나 싶었다.
대학생 때, 어른들은 ‘아 우리 딸, 어디 대학교에 다녀~’ 이 한 마디에 우쭐해하였고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저 00회사 다닙니다’ 한 마디로 모든 소개가 끝난다. 듣는 이도 그 이상 무슨 일을 하는지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어른들에게 소개할 때 그들이 ‘어디 다녀?’라고 질문한 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것처럼. 결혼할 사람이면 그 사람이 배려심이 깊은지, 너와 잘 맞는지 그런 것도 더더!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닌가. 아무리 경제적 능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좋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도 인성이 나쁘면 결혼생활은 불행하기 마련이다. 그 사람의 배경, 집안, 학벌, 회사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진짜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질문은 사라졌다.
회사 등급표가 올라온 게시글 밑에는 우월감과 열등감이 섞인 댓글들이 보인다. 굳이 그런 표를 만들어 순위를 나눌 필요가 있을까?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인데 사회에 나가서도 등급표를 가져와서 대단한 화두인양 떠들어대는 모습이 답답하고 한심했다.
어디 그럼 너의 인간성에도 등급표를 만들어보자. 회사 연봉, 회사 이름이 아니라 너만 가지고 평가해보자. 얼마나 사람을 배려하는지, 얼마나 환경을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얼마나 자기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언제까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표에 너 자신을 구겨 넣을래? 조직 뒤에 숨어있지 말고 너의 이름 세 글자만 가지고 와봐. 난 회사 순위가 아니라 네가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