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밈 Aug 12. 2019

9. 소비의 굴레 -데이트 편

인스타, 핫플에서 부질없음을 느끼다

데이트를 하면 하는 것이 으레 정해져 있다.


“오빠, 오늘 영화 볼래?”

“그래, 그러자!”


평점이 괜찮은 최신 개봉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주중에 일할 때는 저녁을 대충 먹기 때문에 주말에는 꼭 맛있는 것을 먹어줘야 한다.


“떡볶이 먹을까?!”

“좋아!”


맛있는 거라 해봤자 떡볶이를 먹거나 요즘 핫플을 검색해서 새롭고 다양한 음식들을 찾아 먹는다. 요즘 가게들은 어쩜 그렇게 다들 예쁜지 음식점을 고르다 보면 메뉴도 중요하지만 인테리어가 세련되거나 아기자기한 곳으로 발걸음이 향한다. 이른바, 세상 힙한 곳으로!



찰칵찰칵! 알록달록 예쁜 그릇에 담겨 나온 먹기 아깝게 장식된 요리들. 인터넷에 남들이 이미 찍어 놓은 똑같은 사진이 수백 장인 데다가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을 음식 사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왠지 모르게 사진을 찍어 저장하고 싶어진다.


저녁을 다 먹은 후에는 더 예쁜 카페로 가서 음료를 한 잔 마신다. 바깥 경치가 좋으면 금상첨화! 요즘 카페에는 빈백이나 살짝 기대어 누울 수 있는 푹신한 의자가 있어서 편하게 쉴 수 있다.


평범한 하루의 데이트가 끝나면 어느새 10만 원쯤은 눈 깜짝할만한 사이에 쓰게 된다. 뭐, 어때! 맛있는 거 먹고 시원한 음료 한 잔쯤 사 먹는 건 데이트하면서 기본이지!






그런데 문제는 데이트가 끝나고 시작된다. 돈 쓰고, 시간 쓰고 소비로만 점철된 하루가 지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공허함이 밀려온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따뜻한 시간에 대한 충만함은 마음속에 남아있지만, 이렇게 단순하고 천편일률적인 소비지향적 데이트란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같이 쇼핑하고 영화 보고 밥 먹고 커피를 마시고. 그 시간 동안 함께 대화를 나누고 서로 공감할 수 있어 즐겁지만, 내 소중한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것만 같아서 아깝기도 하다. 평범한 시간들이 처음에는 기뻤지만 곧 익숙해졌다.


SNS를 하지 않아서 인증샷 욕구는 없어도 다채로운 데이트를 위해서 핫플에서 밥 먹고 커피 마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핫플을 찾아다니고 인증샷을 찍고 마치 그 가게 홍보대사인 양 SNS에 가게 사진들을 잔뜩 올릴 때는 간혹 의문스럽다.


핫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정말 저곳에 가고 싶어서 가는 걸까, 할 일이 없어서 가는 걸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남들 다 가니까 가는 걸까, 왜 다음 사진은 또 핫플 사진일까? 가게, 가게, 가게! 소중한 하루를 채우는 것이 고작 예쁜 가게에서 밥을 먹는 '나'와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카페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하는 '나'라니. 난 더 다양한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일 텐데. 재미없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평범한 남들 다 하는 데이트에 불과한데. 이런 데이트에 왜 허전함을 느끼는지, 우리는 왜 이렇게 천편일률적인 데이트를 하는지에 대하여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두 가지 물음표가 떠올랐다.



No.1 왜 데이트를 할 때 항상 밖에서 만나 외식을 하고 카페를 갈까?


우리나라는 서구문화권과 달리 '연애'를 시작하면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를 쉽게 집으로 부르지 못한다. 혼자 사는 집이 아닌 이상 굳이 부모님 다 계시는 곳으로 연인을 불러 불편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 예의를 중시하는 문화와 시월드 같은 특수적 분위기가 있어서 그런가. 그리고 부모님에게 괜히 19금 상상을 불러일으켜 괜한 오해와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도 하다. 아니 잠깐, 다 큰 성인인데 그런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보수적인 분위기도 한 몫한다.


유럽 교환학생 시절 가장 놀라웠던 문화는 바로, 사귀는 사람이 생기면 집에서 동거를 시작하고 기숙사도 한 방으로 신청하여 같이 생활한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부모님 다 계시는 집에서 몇 년 동안 같이 동거하고서 남자 친구와 헤어진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가 특이했던  게 아니다. 다른 친구의 친척은 나이도 꽤 있으셨는데 결혼하지 않고 남자 쪽 부모님과 함께 한 집에서 동거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가족이 있더라도 집에서 데이트하는 것은 그냥 보편적인 데이트 문화였다.


우리는 동거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에서 데이트 자체를 잘 하지 않다 보니 연인을 만날 때는 무조건 밖에서 만난다. (이건 여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부모님과 형제를 처음 마주하게 되는 건 결혼 전 상견례 자리이고 그로 인해 갑작스럽게 생전 모르던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 어색하고 낯선 상황이 펼쳐진다. 결혼 전에는 밖에서만 데이트하느라 서로의 가족과 편하게 인사하고 친밀감을 쌓을 시간이 없었으니.)


그래서 데이트 비용은 한 번 만날 때 엄청 깨지기 마련이다. 반복되는 패턴의 데이트는 지겨움과 무료함을 불러일으키고 좀 더 새롭고 자극적인 활동을 찾아 나서게 된다.  가령, VR 게임, 방탈출, 인형 뽑기, 보드게임, 핫플, 낚시 게임 등등. 우리나라에 온갖 잡다한 상권이 발달하게 된 게 이 때문인 건가?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데이트를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소비지향적 데이트를 시작한다.




No.2 소비하며 시간 보내는 데이트보다 좀 더 생산적인 데이트를 할 수는 없을까?


그래, 아무리 먹고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뻔한 데이트가 아니라 뭔가 생산적이고 보람찬 데이트를 하고 싶어! 아아,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설이 심지어 데이트할 때도 적용되는 것인가! 3단계인 애정과 소속의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그다음 단계인 존중과 자아실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하는데 나는 지금 데이트를 하면서도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결국 데이트를 할 때, 보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봉사활동처럼 공헌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거나 목공예 등 뭔가 직접 만들어 생산하는 일을 해보자고 제안하였다.




“오빠, 우리 주말에 등산하면서 쓰레기 줍자!”


플로깅을 등산에 응용해보았다. 플로깅은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으로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직, 너무 뜨거운 여름이라 더위 먹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쓰레기 주우며 등산하는 것은 잠시 접어두어야만 했다.


안돼! 그렇다면 다른 봉사활동이다!!


“오빠, 유기견 산책 봉사 어때?!”


1365 자원봉사활동 사이트에서 유기견 산책 및 견사 청소 봉사활동을 신청하였다. 우천 시 자동 취소라고 하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신청하고 한 달을 기다렸는데 하필 태풍이 그 날 불어와 봉사활동은 자동 취소되었다.


괜찮아! 다른 걸 찾아보지 뭐!!


“벽화봉사가 있네?! 이거 신청해볼까?”


벽화봉사라니. 생각만 해도 설렜다. 그런데 담당자에게 문의해보니 대학생이 아닌 다 큰 성인은 안타깝게도 참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아 눈물...





봉사활동을 신청하려 해도 비교적 가까운 동네에서 주말만 가능한 것을 찾아야 했다. 적당한 봉사활동을 찾는 것도 어려워 지금은 잠시 멈춘 상태다. 근처 마땅한 목공소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소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뭔가 생산적인 걸 해보려고 했지만 역시 생산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보람찬 하루를 만드는 건 쉽지 않다.


그냥 평범하게 밥 먹고 카페 가고 하는 것도 소중한 일상이다. 그래도 언젠가 평범한 데이트 열 번 중 한 번은 이런 생산적인 일도 해보면 좋겠다. 예쁜 가게에서 사진 찍는 것에 몰두하기보다, 땀 흘리며 내 손으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하고 싶다. 자연과 사람을 돕는 아름다운 시간이거나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노동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을.


언젠가 꼭 후기를 가져와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8. 등급 매기는 사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