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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밈 Jul 04. 2019

7. 인간은 그리 간단히 OMR카드로 분석할 수 없다

회사 채용 시 치는 인성검사의 모순

공기업 필기시험을 칠 때 인성검사도 종종 함께 쳤다. 인성검사 시험지에는 수백 개의 문장들이 있었고 그 문장들을 빠르게 스캔하며 1초 안에 '매우 그렇다, 조금 그렇다, 보통이다, 그렇지 않다, 매우 그렇지 않다' 중 하나를 체크해야 한다. 때에 따라 3개의 보기만 주어지기도 한다.


주어지는 문장들 예시로는 '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잘 건다, 나는 과학 실험을 좋아한다, 나는 무단횡단을 한 적이 없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죽고 싶었던 적이 있다.' 등등 오만가지가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회사가 바라는 인재상에 맞게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며 비슷한 문장에서는 비슷한 선택지를 체크해야만 한다. 가령, '나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에 '그렇다'를 선택한 후, '나는 떠들썩한 파티에 참가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좋다'에 '그렇다'를 선택하게 되면 검사 결과가 거짓으로 나타날 확률이 크다. 한 마디로 모순된 선택을 하면 안 된다.




그런데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다. '떡볶이가 좋다, 미역줄기가 싫다'처럼 명확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취향과 달리, 사람의 성격은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수백 개의 질문지에 답을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나를 온전히 분석할 수 없다. 혹여 검사 결과가 거짓으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진짜 내 성격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인성검사에 임하며 체크를 하였지만 비슷한 질문들에 답하면 할수록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낯선 사람에게 말은 잘 건다.

- 나는 끈기 있게 무언가에 몰입하는 것을 잘하지만 아닌 것 같은 것은 빨리 포기해버린다.

- 나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나를 주목하는 것은 싫어한다.

- 나는 평소 물건을 잘 어지럽히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칼같이 정리정돈을 잘한다.

-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새로운 모임에 나가는 것도 좋아한다.

- 나는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혼자 세계를 여행하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일을 하고 싶다.

- 나는 반복적이고 분석하는 일을 잘하지만 창의적이고 기획하는 일도 좋아한다.

- 나는 눈물이 많고 마음이 여리지만아닌 건 아니다 독하게 할 말은 한다.


이는 모두 모순된 나의 성격이다. 이렇게 솔직하게 대답하고 있다 보면 인성검사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정리정돈을 잘한다에 '그렇다' 체크를 했다가 물건을 어지럽힌다에도 '그렇다' 체크를 하고 있자니, 아니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건 괜찮다고  체크했는데, 여러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건 무슨 내향적인 사람이 활발한 사람인 척 거짓 답변을 하다가 결국 내향적인 성격이 들통 나 버린 느낌이다. 내향적인 사람은 무슨 모든 문장에 소극적으로 답을 해야 하나?! 하지만 이게 진짜 내 모습인데 한 순간에 나라는 사람이 거짓으로 부정당하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친한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가, 또 어떨 때는 모르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즐겁게 논 적도 있다. OMR 답안지에 마킹을 하고 있다 보면 뭐가 진짜 나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때그때 진짜 다른데.





기업이 좋아하는 인재상처럼, 모든 사람들이 "창의적! 도전적! 활발하고 긍정적!"이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현실이 이렇게 답답하진 않겠지.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인재상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 시험을 치고, 회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인성검사로 '거짓'을 답변한 사람들을 걸러낸다니. 기업체의 입장도 이해는 한다. 수만 명의 지원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거짓된 답변을 한 사람들을 걸러내고자 하는 것을.


하지만 이딴 인성 검사를 치며 까맣게 색칠한 OMR 카드가 우리 모두의 인성을 대변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감정과 성향이 다양하고 고유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데 모든 상황에서 일관성 있는 답변을 바란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너는 빨강! 나는 노랑! 그러니까 이 문장에 너는 빨간색만 칠하고 너는 노란색만 칠해! 이렇게 될 수 없다. 우리는 빨강, 노랑, 파랑, 금빛, 은빛, 검정, 하양 등등 모든 색깔을 조금씩 다 가지고 있다. 문장의 어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답변을 할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진실이고 진짜 우리의 인성이다. 그러니 혹시 인성검사에서 떨어졌다고 주눅 들지 말자. 오늘도 당신은 충분히 당신답게 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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