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_한강
나는 다시 책 속에 있다. 암흑 같은 침묵과 온통 잿빛으로 물든 우울한 세상을 거닐고 있었다. 검거나 회색인 칼바람에 얼어붙은 거리를 잔뜩 웅크린 체 방황하고 있었다. 뜻 모를 문자와 말들을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 다시 시작이다. 매섭게 웅웅 거리는 고통의 교향곡을 마저 들어야 할 때이다. 하지만 모든 걸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음표와 기호를 조성과 화음의 의미를.....!
그와 그녀의 고통을, 나와 당신의 고통을,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고독의 공허한 눈망울을...!
왜? 희랍어 일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악센트와 방점이 있는 고대 희랍어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문자의 효율성에 밀려 변형되거나 분절된 고대의 문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서양 문명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던 희랍의 철인이 말하는 이데아는 이 소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상실의 고통 속에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있다. 남자는 두 곳의 세상을 산다. 이방인이었을 때 그는 드러나길 원했고, 모국어 속에 있을 때는 희미 해저 가는 세상 속에 숨으려 했다. 사라져 가는 시력대신 무언가 초월적인 것이 자신을 지켜주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 속 그는 불안과 고통을 안고 고독 속에 섬섬히 살아간다. 그녀는 말을 잃었다. 말을 잃음으로 아들과 일상의 삶을 잃었다. 매일 흔들리며 겨우 생존할 뿐 희망은 없다. 모국어의 모음과 자음에 갇혀버린 어린 시절의 고통은 그녀의 혀와 목구멍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 세속 된 세상에 빼앗긴 반짝이는 숲을 되찾아야 한다. 고대 희랍어를 통해 고통의 근원을 찾고자 한다. 그 낯선 문자의 악센트와 방점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희망은 보이질 않는다. 고통은 그들 안에 벽을 세워 그들이 자멸할 때까지 가두어두려 한다. 희랍어 수업을 통해 남자는 여자의 고통을 직감한다. 고통은 다른 고통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고독함은 다른 고독을 직감한다. 서로를 알아본 고통은 그들의 고독한 그림자를 바라본다. 그리고 고통이 부스러지도록 힘껏 서로를 안아 준다. 희랍어 오미크론의 모음 ㅗ가 침묵으로 얼어붙은 그녀의 목구멍과 혀를 녹이며 새어 나온다.
우리 대부분은 자기만의 고통과 고독을 그림자처럼 걸치고 살아간다. 자신의 고통이 클수록 타인의 고통과 고독을 바라볼 마음에 여유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들이 서로를 마주하도록 마음껏 쌓아놓은 벽을 허물어야 한다. 고통과 고통이 마주할 때 우리 안의 연민과 연약한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발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신이 그토록 우리에게서 발견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