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쌓는 사람들...!
올해 유난한 추위와 눈 때문에 산책을 나가는 일이 많이 줄었다. 집 뒷산을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지만 내 산책 경로는 사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마을의 터줏대감 격인 성문사 일주문을 지나 세심로(洗心路)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며 산 아래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잠시 숨을 고르며 내려다보니 오늘도 콘크리트 제국은 타오르는 태양 아래 차갑게 얼어붙은 체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럴 리 없겠지만 가끔은 그들이 산 턱 밑까지 문명의 무거운 회색 덩어리들을 쌓아 올리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곳까지 거슬러 올라온 문명의 요란스러운 톱니바퀴 소리를 뒤로 하고 다시 산을 오른다.
드문드문 소나무가 보이고, 진달래 관목과 상수리나무가 주류인 혼합림에 들어선다. 숲을 걷다 어느 지점에 들어서면 순간 오디오 뮤트 버튼을 누른 듯 갑자기 배경이 고요해진다. 잠시 멈춰 선 발자욱이 남긴 침묵 사이로 겨우내 벌겋게 얼어 있던 내 어머니 손 같은, 차갑고 까실한 바람이 나와 나무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투명하게 얼어붙은 개울 속에서 물방울이 퐁퐁거리리며 터지는 소리와, 작은 새들의 배고픈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내가 명상의 숲이라 부르는 이곳엔 숲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로지 실용성과 내구성에 맞춰 설치된 콘크리트 평의자들이 놓여있다. 현명한 공원녹지과 주무관의 예상대로 오랜 시간 뒤틀리거나 썩어 주저앉지 않고 많은 이들의 든든한 쉼터가 되어주고 있으니 늘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은 낯선 이방인 같아 보이지만 세월이 많이 지나 이끼가 끼고 적당히 삵아지면 자연스레 숲의 일원이 될 것이다.
의자에 쌓인 눈을 대충 쓸어내고 앉는다. 내가 나타나자 겨우내 근근이 먹고사는 배고픈 새들이 혹여 부스러기라도 얻을까 반짝거리는 흑진주 같은 눈을 쉼 없이 굴리며 슬금 다가온다. 잠시 얼음으로 만든 박하사탕 같은 공기를 깊이 들여 마신다, 천천히 열을 세고 내뱉는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 세 번 더 반복한다. 호흡을 잠시 잊고 기억의 줄기를 타고 생각과 생각 사이를 오간다. 깊은 한숨을 쉬며 연신 얼굴을 두 손으로 부비던 이의 모습이 보인다. 고개를 떨구고 숨죽여 뚝뚝 굵은 눈물로 땅바닥을 적시던 이가 보인다. 갈 곳 없는 외롭고 쓸쓸한 이의 체념으로 가득한 눈동자가 보인다. 도저히 잊을래야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자책하며 머리를 쥐어뜯던 이가 보인다. 연신 빈 옆자리를 쓰담는 상실의 고통으로 하얗게 마른 손이 보인다. 숲은 그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의 영혼 깊은 곳, 검게 그늘진 그곳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의 어깨 위로 떨어지던 산벚나무 꽃잎과 소복이 쌓이던 눈을 기억하고 있을까! 개울가 돌탑들이 쌓이고 무너지던 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명상의 숲 가장자리로 수량은 적지만 사철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다. 산책로와 개울이 교차하는 곳에 언제부터인지 주먹만 한 돌 다섯 개로 쌓은 엉성한 돌탑 하나가 보이더니 날이 갈수록 돌탑의 수가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크기와 생김새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하나의 돌 위에 하나의 돌을 쌓아 올린 단순한 누석형의 탑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게중심과 중력이라는 물리법칙을 이해하고 돌을 올릴 때마다 잠시 숨을 멈추고 집중해야만 쌓을 수 있는 탑들이다. 빅뱅이 있었던 138억 년 전 우주를 떠돌던 입자들이 지금의 돌탑이 되기까지 무슨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은 과학자들의 경이로운 상상력과 우아한 방정식에 갇혀있으니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순 있지만 이해할 순 없다. 하지만 아랫돌에 맞대어 윗 돌들이 쌓이는 단순한 돌탑들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순 있다.
토속신앙에 기반을 둔 미신이며, 개울의 생태환경을 교란하는 무지한 행위라고 싸잡아 비판할 수도 있다. 전혀 미적이지 않고 숲과도 조화롭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돌탑을 쌓는 이들의 행위를 비판하지도, 그들이 쌓아 올린 돌탑들을 발로 차 무너트리는 일은 상상도 하지 않는다. 최소한 기꺼이 숲을 찾아와 걷는 이들은 숲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재미로 쌓았던 간절함으로 쌓았던, 돌덩이가 돌탑이 되기까지 얼마나 긴 우주의 시간들이 쌓이고 우연과 인연들이 쌓였을지를 생각한다. 내가 인식하거나 하지 못하는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것들은 찰나의 빛조차 존재할 수 없는 암흑의 공허한 우주에 내던져질 운명임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물질의 내면을 비물질의 외형을 상상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행여, 이 엉성한 돌탑 안에 명상의 숲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하염없이 울던 이의 실낱같은 희망이 담겼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가 돌아와 무너진 그 돌탑을 바라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