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염 재발이 가져다준 일상의 깨달음
매년 딱 그만 때였다. 긴 설 연휴를 사나흘쯤 보내고 슬슬 일하는 것보다 쉬는 게 더 불편하고 힘들어져올 무렵이었던 것 같다. 30년 넘도록 몸속 깊게 밴, 일에 대한 관성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일을 떠나 멈춰 서거나 잠시도 쉬는 걸 못 견뎌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긴 세월, 일이란 경계 안에서 몸과 생각의 근육들은 그것에 기계적으로 최적화되었고 심지어 가족들 마저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밥을 빌어 먹지 않고 벌어먹는 '밥벌이의 무거움'은 단 한 번도 내 삶에서 경감되거나 탕감받지 못했다. 일이란 나에게 숭배의 대상이며 숙명과도 같았다. 사정이 있어 두어 번 한 달 정도 일을 쉬어 본 적이 있었다. 시간의 lotto에 당첨되 엄청난 양의 자유 시간을 벌어 들였지만 돈도 써본 사람이 쓸 줄 안다고 갑자기 주어진 자유 시간은 사나흘만에 고통과 자발적 구속의 시간으로 돌변했다. 매일 출근한 이웃들의 빈 차고와 개선장군처럼 전조등을 환하게 밝히고 퇴근하는 이웃들을 창 너머로 훔쳐보는 일은 정말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우리의 백공 선생들은 어떻게 이 긴 하루를 보내고 있는 걸까? 탁한 공간과 공허한 시간이 버무려진 그 질식의 삶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 걸까? 어느 날 모자와 후드티로 나이를 가리고 산책을 나서다 건너 집 발바리 두 마리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평소엔 주로 양지바른 제 집 앞에서 늘어지던 놈들인데 그날따라 활기가 넘쳐 온 동내를 활보하고 있었다. 살다 발바리가 부러울 때가 다 있었다. 잠시 일을 쉬고 있던 것뿐인데, 왜 죄를 지은 듯, 자신과 가족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 듯 한 생각이 들었을까? 세상 모든 것에(발바리 마저도)위축된 체 내 삶을,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스스로 게으름과 무능력의 낙인을 주홍글씨처럼 몸에 세기고서도 어떻게 단 한 마디 변론과 저항조차 하지 못했던 걸까? 왜 그리도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걸까?
투병기를 쓴다 해 놓고 사설이 너무 길어졌다. 하지만 이런 불안한 심리 상태도 그리 건강한 마음은 아니므로 평생 투병해야 하는 정서적 질병임은 분명하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역시나 이번 설 연휴 또한 마음이 불편했고 9일이라는 시간(기간)은 생각보다 느리게 흘렀다. 슬슬 스트레스가 쌓여가며 식욕을 잃었고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래 매운 음식을 먹자...!" 가족들과 평소 자주 찾던 중식당을 가기로 했다. 그날은 평소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던 내가 매운 짬뽕을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거의 비워 냈다. 그리고 쓰릿한 속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으로 달려가 명절이니 디저트도 고급으로 먹어야 한다며 특판 중인 2+1 ㅇㅇ다즈 아이스림 한통을(작은 용량) 다 비웠다. 시건의 발단은 아마 거기서부터 인 것 같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내 몸에 준 자극은 반짝 효과를 보인 후 서서히 대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어찌 9일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출근을 했다. 그렇게 오래 쉬었음에도 회사 시스템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체 10분도 걸리지 않았다(사실은 회사 입간판을 보자마자 일거다), 그만큼 내 몸은 밥벌이에 최적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와 앉는 순간 갑자기 명치끝이 답답해져 왔다. 그러더니 명치에서 목구멍까지 수직으로 통증의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오후 들어 통증의 선들은 더욱 굵고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고 저녁으로 먹을 죽을 준비 해 달라 부탁을 했다. 그렇게 나의 죽식은 시작되었다. 반 컵정도 찹쌀과 맵쌀을 섞어 묽은 죽을 끓여 먹거나 굶기를 반복했다. 좀 나아지면 다시 밥을 먹고, 다시 나빠지면 굶거나 죽을 먹는 일을 반복했다. 체중은 줄어들고 삶의 의욕 또한 비례해 줄어들었다. 아내의 다그침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병원 가는 일은 미루고 또 미뤘다. 급기야 물을 삼키는 것도 불편하고 꺼려지게 되었다. 이대로 가단 사달이 나겠다 싶어 병을 한참이나 키우고 나서야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다. 두 시간을 기다려(사실 이게 제일 싫었다) 진료를 받고 약을 지어 다시 회사로 복귀해 동료들의 한심하단 눈초리를 은총처럼 받으며 하루를 겨우 버텨냈다. 그렇게 나의 투병의 시간들이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었다.
지금은 약을 먹고 증세가 좀 호전되었다.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이젠 죽대신 밥을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밥 한 술을 이렇게 오래 꼭꼭 씹어 먹어본 게 언제인가...!, 밥이 이렇게 달았던 적이 있었던가...!, 음식을 먹는 행위가 이렇게 감격스러웠던 적이 있었는가...!, 김지하 님의 시 '밥은 하늘입니다'에 이런 글이 있다. "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밥은 정말 하늘이 맞다. 하늘을 내가 다 가질 수 없듯, 밥은 서로 나누어 먹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天命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니 잘 먹어야 한다. 그 밥 한 수저에 생명이 깃들고 사랑이 담겨 있다. 예수께서도 먹는 행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다. 오병이어로 군중을 먹이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까지도 만찬을 배푸셨고, 부활하신 몸으로 상실의 고통 속에 말라가던 제자들을 위해 손수 아침밥을 지어 먹이셨다.
우리는 일상의 작은 뒤틀림에도 이렇게 쉽게 무너 저 내릴 수 있다. 작은 상실은 그 자체로는 대수롭지 않게 보일지라도 우리 몸에 생명이 남아 있는 한 끝없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며 우리를 가르치려 들것이다. 식도염이 내게 고통을 주었지만 한편 밥의 소중함을 일상의 경이로움을, 감사함을 일깨워 주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