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그 위대함에 대하여~

엉덩이 근육들의 투쟁과 희생~

by sinwolrang

우리 몸에 근육(살)이 가장 많은 곳을 들라면 단연 엉덩이일 것이다. 지방이 적고 탄력성이 매우 높으며 능동적인 무게추 역할을 통해 직립보행을 가능케 한다. 또한 배설 기관과 생식 기관을 품고 있는 골반, 머리와 상반신의 무게를 지탱한 체 유연함을 유지시켜 주는 고관절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신체부위 중 하나이다. 근육질로 잘 발달된 풍성한 엉덩이는 심미적 아름다움과 건강과 풍요, 생육과 번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생리적인 기능에 머물지 않고, 앉는 행위로 탄생한 수많은 사상과 예술, 과학의 오랜 동반자이자 친구이기도 하다.


중년의 사람들 중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는 평범한 이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신체의 변화가 있다면 노안과 근손실을 들 수 있다. 노안은 서서히 진행되기에 심각성을 자각하는데 일정 시간이 걸리지만 근손실의 경우 비교적 빠른 신체변화를 격기에 곧바로 자각하는 경우가 많다. 몇 해 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 후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 거울 앞에 섰을 때의 일이다. 피로함의 수증기가 안개처럼 가득 찬 욕실 거울에 얼핏 비친 허벅지와 엉덩이를 보는 순간 아연실색하고야 말았다. 대영박물관 입구에 버티고 선 기둥처럼 굵고 강인했던 허벅지가 고대 희랍의 버려진 유적지에 쓰러져 나뒹구는 석조 기둥처럼 기아 상태로 말라 있었다. 그 위에 올라 붙은 엉덩이는 퇴화된 꼬릿뼈가 그것이 엉덩이였다는 흐릿한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 허벅지와 경계조차 사라진, 오직 의식적 감각과 기억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었다. 지난여름, 방학을 맞아 본가에 내려와 있던 딸은 이런 내 모습을 보더니 대뜸 " 아빠~ 이제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곧 거미 할아범이 될 거야, 팔다리는 가늘고 배만 볼록 나온 거미처럼 말이야~" 하며 나에 대한 인신성 비난을 서슴없이 쏟아 내기도 했다. 물론 진심 어린 걱정에서 나온 충격요법성 발언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거미 할아범'이 내 건강에 대한 무관심과 안일함에 대한 이렇다 할 변화를 이끌어 내진 못했다.


그렇게 급속한 근손실을 겪으며 밋밋해진 엉덩이와 마른 허벅지를 가지고도 큰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었다. 딱히 불편했던 일을 찾으라면 가족들의 잔소리(운동이란 단어로 만든 마법사의 지치지 않는 주문 같은)가 유일했다. 하는 일은 그대로인데 식사량이 줄어들고 있었기에 딱히 배가 나오거나 거미 할아범의 전형적 몸매로의 변태는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사라진 근육들을 굳이 돼 찾으려 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읽고 쓰기가 주는 달콤함과 짜릿함을 탐닉하며 오렌지 맛 환타색 저녁노을빛 같던 건강에 대한 자만심은 밀려오는 어둠 속 숨 죽여 기다리던 절망의 흑빛 저주에 빠지고 말았다.


틈틈이 시간을 내 책을 읽거나 글쓰기에 몰입해 두어 시간은 미동도 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 윤활유가 말라붙어 끼익끼익~ 금속성 마찰음을 내며 간신히 돌아가는, 100년 넘은 괘종시계 톱니바퀴 같은 생각을 쥐어짜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순간 엉덩이가 저려오더니 통증 때문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일시적 증상이라 생각했지만, 다음날도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까지도 의자에 앉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원인은 예상한 대로 엉덩이 근육이 사라지면서 골반뼈가 살갗을 짓누르며 생기는 통증이었다. 이제 막 글을 읽고 쓰는 것에 조금씩 흥미와 재미를 느끼던 터라 실망감이 크게 다가왔다. 한동안 책상 앞을 떠나 있었지만 이별 통보 없이 홀연 사라진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들을 되찾아 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은 본능으로 직감했다. 단백질 위주의 식사와 하체근육 운동이란 낯선 일상을 내 삶에 욱여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마음과 생각이 글을 읽고 쓰는 토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엉덩이 근육량이 충분치 않다면 아무리 좋은 책이 있더라도 그 맛과 향을 온전히 느낄 수 없으며(실제 카를로스의 '영혼의 미로'를 엉덩이 눈치를 보며 겨우 읽고 있다), 생각의 스펀지에 스며든 촉촉한 단어와 의미들을 쥐어짜 온전한 한잔 분량의 글을 써낼 수가 없을 것이다. 직업으로 글을 쓰는 작가나 사상가들은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길게는 수년을 흰 여백의 공간과 외로운 사투를 벌인다. 만약 그들에게 글을 쓰는데 가장 큰 장애물을 꼽으라면 단연 엉덩이 통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공부 잘하는 이들을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라 부르기도 한다. 책상 앞에 앉아 긴 시간오롯이 책과 씨름하려면 단연 엉덩이 끈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엉덩이 소중함과 고마움을 뼈저린 고통을 통해 매일 느끼며 산다. 책은 손에 들고 서성거리며 읽다 다리가 아프면 잠시 앉아 읽고, 브런치는 한 문장씩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쓰고 있다. 혹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면, 더구나 글을 읽고 쓰는 게 삶의 큰 기쁨이자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잠시 자신의 엉덩이 근력에 대한 생각 해 보기를 바란다.


[우리 지식의 대부분은 성실하고 인내심 많은 엉덩이 근육들의 산물이며, 인류문명과 역사는 짓눌린 그들의 투쟁과 희생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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