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씽아, 이젠 안녕~

15년 함께한 자동차를 떠나보내며....!

by sinwolrang

씽씽이를 처음 만나던 날~

15년 전, 딸애가 중학교 입학하던 해였다. 섣달, 얼음벽 아파트 등 뒤로 홀쭉 마른 그림자가 옹기종기 모여들던 추웠던 어느 날, 흰 눈송이와 투명한 얼음을 모아다 찍어낸 듯 희게 번쩍거리며, 마치 수인번호 같은 어울리지 않는 번호판을 달고 하얀 미소를 띤 차 한 대가 우리 가족에게 왔다. 우리는 추위에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이곳저곳을 쓰담고, 신차 증명서처럼 붙어 있는 비닐들을 정성 들여 하나하나 떼어냈다. 공장서 갓 찍어낸 검정 고무신같이 반질거리는 타이어도 마치 악수를 청하 듯 툭툭 발로 건드려 보며 진심으로 환영했다.


곧이어 환영의 대미를 장식할 카퍼레이드를 위해 O. 헨리의 앙상한 가로수들이 도열해 있을 마을 길로 첫 드라이브를 나설 참이었다. 하지만 카퍼레이드는 시작도 하기 전에 무산될 위기를 맞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제 맘에 들지 않을 14살, 이제 막 세상을 향한 분노와 좌절의 싹을 틔우던 딸아이의 가시처럼 뾰족한 외침이 들려왔다. "왜 난 늘 뒷자리에 앉아야 해~, 이번엔 내가 아빠 옆에 앉겠어~"


차에 이름을 지어야 한다.

난 무언가를 내다 버리는 걸 잘하지 못한다. 이제껏 살면서 최근에 새로 들인(어쩌면 마지막 차일 지도 모르는) 자동차까지 딱 3번 바꿨다. 10년에 한 번꼴로 바뀐 샘이다. 평소 자동차는 잘 굴러만 가면 된다는 어줍은 신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새로움의 설렘과 긴장보다 속옷장에서 늘어진 러닝셔츠만 쏙쏙 골라 입을 정도로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더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 보니 새로 들인 차를 포함해 자동차를 2대나 보유한 자칭 중산층으로 신분이 격상되었다. 차가 2대가 되니 구분 호칭에 대한 문제가 생겼다. 모델명으로 부를 건지 1호, 2호로 부를지 잠시 고민하던 참에, 어려서부터 온갖 물건에 이름 붙이길 좋아하던 딸애는 자기가 이름을 짓겠노라 외치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번에 새로 산 차는 '씽씽이', 전에 있던 차는 '씩씩이' 어때~"라며 유치원 꼬무래기들 마냥 재잘거리며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득의양양 목소리를 높였다. 성의 없는 억지스러운 작명에 어이가 없었지만 집안의 평화를 위해 토를 달지 않기로 빠르게 아내와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다.


씩씩이를 먼저 떠나보내다.

4년 전, 단 한 번도 앓아눕지 않고 성실 근면하게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주었던 씩씩이를 먼저 보내주었다. 정기검사 불합격 통보와 함께 이제 그만 보내주라며 웃던 젊은 검사원의 단호한 선고를 받은 터였다. 그는 의아해 하는 나를 끌고 가더니 공중에 들어 올린 씩씩이의 그늘진 하부를 보여주었다. 온통 암갈색으로 부식된 골조가 위태롭게 차체를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엔진룸에서는 고름 같은 검은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손전등 빛에 반짝이며 끈적한 침묵으로 내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앓는 소리를 내며 이제 그만 쉬고 싶어 하는 씩씩이었지만 그렇게 보내는 게 아쉬워 한번 더 정비해 조금 더 타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안전도 생각해야 하고 노쇠한 씩씩이에게도 미안하고 하니 이제 그만 보내주자는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며칠 후 폐차 접수를 하고 씩씩이 연혁과 무사고 공적에 대해 접수원과 한참 수다를 떨었다. 씩씩이에게 그 정도의 치사는 부족했지 결코 넘치진 않았다. 서류를 접수하고 정산을 하던 중 사무실 창 너머로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아내가 보였다. 그 순간 괜히 나까지 울컥해 눈가에 힘을 주며 애써 눈물을 참고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10년 넘게 가족으로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가! 그리 순탄치만은 안았던 내 청춘과 함께한 차인데, 영영 이별 앞에 마음 한 조각 덜컥 때어준들 무엇이 이상 하겠는가! 씩씩이의 빛바랜 백색 도장이나 반백이 되어버린 내 머리도 속절없는 세월의 속력에 그대로 순응했을 뿐이다. 씩씩이를 차들의 무덤에 홀로 두고 뒤돌아 오던 길, 봄꽃은 왜 그리도 푸지게 피어 눈이 부시던지...!


씽씽이와 함께한 시간들~

씩씩이가 내 청장년 기와 함께 했다면 씽씽이는 중년기를 함께한 차다. 씽씽이는 내게 이동 수단이자 내밀한 사적 공간으로 나와 15년을 함께 했다. 그래서 나에 대한 비밀을 가족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달리는 씽씽이 안에서라면 그 어떤 얽힌 감정도 다 풀어낼 수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면 마구 소리를 질렀고, 괴롭고 슬플 땐 핸들을 부여잡고 소리 내 울기도 했다. 살다 가끔 구름이 걷힌 맑은 날이 오면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발을 구르며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그저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조각구름처럼, 흘러가는 감정에 몸을 맡기면 그뿐이었다.


씽씽이가 우리 집에 오던 해 중학교에 입학했던 딸애는 이제 서른을 앞에 둔, 자기 앞가림 정도는 너끈히 하고도 남는 살뜰한 아가씨로 변했고, 아내와 나는 정해진 운명처럼 딱 부모님 나이 때 모습만큼 늙었다. 15년을 우리 가족과 함께 한 씽씽이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와 사흘 내 흘렸던 내 눈물을 알고 있다. 실직과 질병으로 속절없이 무너지던, 한줄기 빛조차 없이 암흑과 같았던 절망의 날들을 알고 있다. 점점 시들 해저 가는 나를 싣고 새벽 푸른빛과 석양의 붉은 노을빛이 고단함처럼 짓게 깔린 거리를 달려 출퇴근을 함께 했다. 그렇게 씽씽이는 흔들거리던 나와 함께 내 가족을 먹여 살렸다.


명절 국토대장정을 비롯해 여름휴가와 가족 여행길에서 단 한 번의 가벼운 접촉사고 없이 기꺼이 우리 가족을 지켜주었고, 자의든 타의로든 단 한 번도 카센터에 드러눕지 않았다. 앞으로 씽씽이는 켜켜이 쌓여 퇴적된 시간의 기억 속에 만 남아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모든 감정과 기억이 시간이란 강한 압력에 눌려 화석이 될 것이고, 난 체머리를 떨고 앉아 들기름 먹여 반질거리는 가래나무 열매를 마른 손으로 주무르는 노인처럼, 씽씽이와 함께한 추억의 화석들을 꺼내 만지작거리며, 실 바람 같이 여리게 살다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씽씽이에 대한 소회를 들 라면 , "씽씽아 그동안 참 고마웠어~, 좋은 새 주인 만나 이쁨 받으며 안전하게 조금만 더 달려주렴~"


다시 새 차를 들이다.

씽씽이를 내 보내기로 하고 새 차를 들였다. 긴 세월 함께한 씽씽이가 싫증이 났거나 고장이 나서 차를 바꾼 건 아니다. 출퇴근 거리가 길기도 하거니와 이제 씽씽이와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게 서로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이제 씽씽이는 15년 전 제 이름을 손수 지어줬던 딸에게 입양을 가게 된다. 딸 인생 첫차가 아빠가 물려준 오래돼 낡은 차라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금명이 아빠 관식 씨는 아마 배를 팔아서라도 금명에게 새 차를 사줬을 텐데...! 하지만 긴 시간 아무 탈 없이 잘 타던 차였기에 근본을 모르는 중고차를 사 속앓이를 하며 타는 것보다야 훨 마음이 놓이긴 하다. 초보 운전자가 경험을 쌓는데 아빠 차를 물려받아 타는 거 이상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씽씽이가 우리 가족과 인연을 이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씽씽이를 온전히 쉬게 해 줄 그날이 오기 전까지 조금만 더 힘을 내 안전하게 딸아이와 함께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 가길, 그리고 씽씽이가 우리 가족에게 고마웠던 차로 오래오래 기억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엉덩이, 그 위대함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