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과 문화시민
잎새마다 햇빛이 초록으로 녹아 번지던 오월의 끝자락에, 송이마다 달콤하고 매혹적인 유혹을 품은 아카시아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공이 된 어린 누나의 가난한 핸드백을 뒤져 몰래 훔쳐 씹던 아카시아 껌 향기가 뭉클 그리움으로 깨어나며 오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누렇게 빛바랜 사무실 벽에 걸린 달력에서도 오월은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시간 속 오아시스와도 같은 붉은색 연휴도 이젠 먼 과거처럼 흐릿해져 보였다. 마지막 주 29일에 "대기 질 매우 좋음" 기호 같은 상큼한 파란색 동그라미가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그려져 있었다. "오후 7시 30분 공연 관람"
공연 당일~ 시간은 기름칠이 안된 바퀴처럼 끽끽거리며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무실 벽에 걸린 누런 금장 국회 마크와 지역 국회의원 이름이 새겨진 벽시계의 초침을 초초하게 쫓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자신을 쫓는 이들에겐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 퇴근 시간은 자유호 열차 환승역까지 볼멘 표정으로 마중 나와 주었다. 한결 부드러워진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새하얀 이팝나무 가로수길을 달렸다. 폭풍처럼 차 안까지 밀어닥친 아카시아 향기에 가슴속에서 수만 개의 꽃송이가 팡팡 터지고 있었다.
공연장 주변은 벌써 차량들로 붐비고 있었다. 공연 시작 시간이 다가올수록 차들은 한 무리의 오리 떼처럼 뒤엉켜 어기적거리며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엔 칠흑 같은 어두운 밤바다의 등대처럼 교통경찰관의 호각 소리만이 이 혼돈과 조바심에서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빛이었다.
뛰듯이 공연장 로비에 들어서자 막 예종이 울리고 있었다. 서둘러 티켓을 받아 들고 그림자처럼 좌석을 찾아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좌석은 만석이었고 우렁이처럼 검은 눈망울들이 기대와 설렘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잠시 후 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자리에 앉은 악장이 일어나 바이올린 활을 들어 올리자 오보에가 라(A) 음을 내고, 곧이어 악장이 활을 켜 라(A) 음을 단원들에게 들려주었다. 무대는 온통 라(A) 음으로 가득 찼고 그 단음의 소리만으로도 관객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편성된 악기들이 조율을 마치자 박수소리와 함께 세련된 연미복 차림의 곰살맞게 생긴 지휘자가 등장했고 곧이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웅장한 화음이 가슴을 때리고, 때론 애잔한 선율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이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손을 흔들어 댔고, 어른들은 저마다 교양 있는 문화시민으로 계몽되어 갔다.
지방 중소도시로 분류되는 우리 시는 자랑스럽게도 시립 예술단이 조직되어 있고 그 안에 시립 합창단과 시립교향악단이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올해 25주년을 맞은 시립 교향악단은 매월 정기연주회를 열 정도로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정기연주회 입장료는 5,000원, 온라인 선착순 예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매월 예매 창이 열리자마자 순삭 되기 일쑤이다. 대도시의 큰 규모의 시향과 비교하기엔 어렵지만, 50여 명 정도의 단원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로 순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가끔 공연을 보며 "공연 수익금이라고 해봐야 공연장의 900석을 다 채운다 해도 월 450만 원이니, 이 수익금으로 어떻게 교향악단을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머지 대부분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되겠지만 시의 빠듯한 예산 규모로 봐서는 단원들의 급여나 처우가 열악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면 감사한 마음으로 연주자들을 향해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항상 문화적 소외감과 갈증을 느끼는 지방 중소도시에서 우리 시의 시향은 문화적 오아시스이자 축복과도 같은 존재이다. 우리 시의 시향은 나의 "빈필"이며, 수억짜리 "hi-end 오디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