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短想

영혼의 미로_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by sinwolrang

잿빛 하늘이 무너 저 내린 산 아래 도시는 마치 무덤에 사는 묘비들처럼 을씨년스럽다. 우리의 앞 날을 예고하듯 검은 까마귀 한 쌍이 운명 같을 거센 바람을 거슬러 안간힘을 다해 그곳을 향해 날고 있다.


종일 서풍은 잿빛 먹구름들을 양몰이하듯 몰아 창 너머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다. 희미한 안개처럼 비실대던 태양이 수십억 년의 하루를 허비하고 찬란히 저물던 서쪽 능선으로 패잔병처럼 사라졌다.


늘 빛의 끝자락을 잡고서 야비한 검은 미소를 띠며 슬금 등장하던 어둠이, 좋은 패를 쥔 노름꾼 마냥 먹구름의 목을 틀어지고 재빠르게 세상이란 무대를 암전 시키고 있다.


아랫마을에 깔리던 어둠이 앞 산 능선을 막 타고 오르자마자 박공지붕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폭풍 같은 봄비가 내리고 있다.


맹렬한 봄의 폭풍 앞에 어린 꿈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나의 금쪽같은 봄꽃들을 참담함으로 바라본다. 이제 저 가슴 아리게 찬란한 세상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이제야 봄이 그냥 봄이 아닌 기적임을 알았는데~


그렇게 봄의 제전이 끝나가고 있을 때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장편소설 "영혼의 미로" 2권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 성가족 성당 내부에 있는 나선형 계단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다.


미로의 시작과 끝인 나선형 계단과 연결되어 있는 세상과 이야기에 깊이 빠져 있었다. 열흘 동안 활자들이 만들어 낸 은유의 안개에 싸인 미로 속을 정신없이 헤매고 다녔다.


실제 바르셀로나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닌 듯 생생하게 기억되는 어두운 뒷골목과 냄새들, 내 상상력이 그려낸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이글거리던 눈빛들, 그리고 긴 여운과 함께 기분 좋은 피곤함이 밀려왔다.


알아 갈수록 더해지는 작가에 대한 경이로움과 존경의 마음, 그리고 이제 그와 그의 우주와 그의 이야기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잊힌 책들의 묘지" 시리즈 4권 중 아직 읽지 못한 두 권의 책이 남아있다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된다. “바람의 그림자“에 이어 아직 잊힌 책들의 묘지와 운명의 미로 속을 헤매고 있을 다니엘과 페르민에게 따스한 애정을 보낸다. 기회가 된다면 핫셀블레이드 X2D를 목에 걸고 배낭에 이 소설을 넣고 바르셀로나 거리를 발이 불어 트도록 온종일 쏘다녀 보고 싶다. 바르가스와 알리시아가 머물렀던 공간들을 찾아다니며 그들 시선이 닿았을 모든 것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것이 현실이던 상상이던 우리 믿음이 곧 실체이기에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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