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scarpia, davanti a Dio!
여름과 가을이 팽팽한 기싸움을 하던 9월 초, 시립 교향악단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오페라 공연이 있었다. 자코모 푸치니의 3대 오페라로 불리는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중 이번 무대에 오른 작품은 '토스카'였다. 내 생애 첫 오페라는 불행하게도 사랑과 증오, 잔인한 운명과 죽음을 주제로 한 비극이었다. 좀 밝은 풍자와 해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희극이었으면 좋았겠지만, 파국적 이야기로 가득한 '토스카'가 내 첫 오페라였다.
막 간마다 지휘자의 해설과 우리말 자막을 볼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어 작품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해설에 따르면 1900년 로마에서 '토스카'가 초연될 때 관객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카톨릭의 심장과도 같은 로마에서 아무리 연기라고는 하지만 여주인공 '토스카'가 '스카르피아'에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과 그녀가 '스카르피아'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은 당시 이탈리아 대중들의 정서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지휘자는 해설에 붙여 푸치니의 작품 중 '라보엠'이 동화 수준이라면 '토스카'는 19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200년이 지난 지금에 봐도 충격적인 스토리와 연출이었다.
잠시 글이 곁길로 나가야 한다.
매체를 통해 오페라가 어떤 형태의 예술적 유희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클래식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는 사전 지식을 습득하거나 언어/문화적 장벽을 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납득하기 어려운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 또한 더욱 클래식 연주회나 오페라 공연에서 멀어지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또한 최근에서야 클래식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 시 교향악단이 매월 정기연주회를 열고 있으며, 문화시민 양성 특가로(사실 5000원이면 무료라고 봐야 함) 시민들을 위해 양질의 공연을 제공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이다. 그 후론 시와 연주자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열심히 배우며 즐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시 문화 재단에서 오페라 '토스카'를 무대에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온라인 티켓 예매를 하려다 잠시 멈칫하고야 말았다. 당연히 5000원이겠지 하며 결제 버튼 클릭을 하려다 티켓 가격이 평상시 보다 8배나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잠시 동공이 흔들리고 마음이 요동치고 있음을 느꼈다. 이 돈을 내고 이 공연을 봐야 하나" 하는 생각과 비싼 만큼 더 큰 감동이 있겠지'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 성악 배우들의 개런티와 연출 비용 등을 생각하면 결코 비싸지 않고, 서울에서라면 두서너 배는 더 들 거라는 생각을 하며 어느새 마우스는 예매 버튼을 클릭하고 있었다.
공연을 기다리는 동안 비싼 공연이니 하나라도 놓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오페라 줄거리와 아리아를 열심히 찾아보고 들었다. 대망의 공연 날이 되었고 초침이 퇴근시간에 들어서는 순간 사무실 동료들을 뒤로하고 공연장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날따라 평소와 다르게 차가 막히더니 공연 시작 10분 전이 돼서야 간신히 주차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어둑한 주차장과 조급한 마음은 필히 사고를 부르는 법..., 급하게 주차를 하다 그만 주차된 다른 차 범퍼를 살짝 긁고 말았다. 이것으로 내 30년 무사고 경력이 마침내 끝나고야 말았다.
급히 차에서 내려 상대 차 범퍼를 확인했다. 살짝 스크래치가 나있었다. 연락처를 찾기 위해 앞 유리창을 아무리 찾아봐도 전화번호는 없었다. '아마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의 차일 것이다' 생각하며, 우선 발권을 해 아내라도 먼저 들여보내려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남자 주인공 카바라도시'의 테너 톤 아리아 'Recondita armonia(오묘한 조화)'가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화려한 무대가 아닌 방금 전 사고가 났던 주차장에 가있었다. 지정 좌석을 찾아 아내를 앉히곤, 나는 안내 데스크에 필기구와 메모지를 빌려 사고 사실과 연락처를 적어 상대 차 창문에 붙여 놓고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공연에 집중해 있는 관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어 맨 뒤에 서서 나머지 공연을 보았다.
사고 순간 경미한 스크래치니 괜찮겠지 하는 마음과 나중에 그 스크래치를 발견한 차주의 마음이 아주 잠깐이지만 내면에서 충돌했다. 나는 주인공 토스카가 무대에서 사라지고 대신 작은 번거로움과 몇 푼 돈 때문에 양심을 내던진 주인공이 발가벗긴 체 웅크린 모습으로 객석의 검은 눈동자들이 뿜어내는 경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후회와 절망의 아리아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었다. 마지막 아리아가 끝나자 주인공은 '지옥에서 보자 비굴한 양심아~'라고 외치며 비극적 결말 속으로 쓸쓸히 사라졌다.
토스카는 '지옥에서 보자 스카르피아.'(O scarpia, davanti a Dio!)라고 외치며 성벽에서 떨어져 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