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크루즈에서의 밤~
기항지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크루즈선이 보이면 이제 편안히 쉴 수 있는 숙소로 돌아간다는 안도감과 함께 피로감이 밀려온다.
멀리서 바라본 크루즈선은 바다에 거대한 도시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 듯 위용 찬 모습이었다. 하나둘 객실 창문마다 불이 켜지고 갑판과 굴뚝에 오색 조명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불야성 같은 크루즈의 밤이 시작된다.
대부분 승객들은 크루즈로 돌아와 곧바로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는 사이 크루즈는 조용히 출항을 한다. 객실로 돌아가 씻고 침대에 누워 선상 신문을 보며 오늘 밤 공연과 이벤트를 확인한다. 슬슬 선내를 어슬렁 거리다 보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 그곳은 음악소리와 웃음소리로 항상 소란스럽다.
매일 밤 대극장에선 아크로바틱, 오페라, 뮤지컬 등 수준 높은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사실 이 모든 공연을 비용으로 생각하면 배 값으로 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출항을 해야 열리는 카지노에선 붉은 조명을 켜고선 쾌락과 행운을 쫓는 이들을 유혹한다.
배팅하는 플레이어와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 사이로 침묵과 탄식과 탄성이 뒤섞여 입구까지 흘러나온다. 그 소리는 모닥불 불티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짧게 번뜩하고는 회색빛 재가 되어 그들의 허무한 발치에 쌓인다. 층마다 있는 라운지와 바에서는 재즈나 댄스 음악이 라이브로 흘러나온다.
절대 지치지 않는 우리 어르신들은 우리가 흥 많은 민족임을 매일 밤 충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댄스 의상까지 갖춰 입고 음악과 물아일체가 되어 춤을 추는 모습은 참 근사해 보였다. 아내는 멀뚱히 춤추는 어르신들을 쳐다보고 있는 나를 힐끗 보더니 "왜~ 춤 한번 춰보시게요?", "크루즈를 제대로 즐기려면 춤도 배워야 하고 노래 연습도 해야 하고~, 할게 참 많네요!" 하며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이 온 힘을 다해 이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숙연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1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같이 왔다며 얼마나 좋아하실까!" 눈물이 차올라 갑판에 올라 칠흑 같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감정을 삭이고 있었다. 배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연안의 고기잡이배들의 불빛도 가물거리며 암흑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알지도 알 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로, 검은 장막에 가려진 인생의 여정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먹이를 찾기 위해 뱃전에 하얗게 부서진 파도 위를 위태롭게 날고 있었다. "인생은 죽음 위를 날고 있는 저 갈매기 같겠지!", "삶의 양력을 잃어버리면 죽음의 검은 바다로 곤두박질치겠지!" 삶과 죽음은 밤바다와 밤하늘이 만나는 수평선처럼 경계가 없다.
우리는 죽음을 전제로 살고 있으며 우리 운명의 시간은 언젠가 반드시 멈출 것이다. 그래서 크루즈의 밤은 사치스럽게 화려하고 내일이 없는 듯 치열하게 불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