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 궂은 날씨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선상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젠 세수 안 한 맨 얼굴과 까치집 진 머리도 자연스럽게 내밀고 다닐 정도로 배 안에 모든 게 익숙해져 있었다. 객실 복도에서 만난 하우스키퍼도 식당 웨이터, 바텐더, 젤라토 가게 종업원, 포토포토 총각도 모두 친숙해졌다. 이젠 선내 지도 없이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훤해졌다. 아침 조식으로 무슨 음식이 나오고 어떤 음식이 입에 맞는지, 어떻게 조합에 먹어야 더 맛있는 지도 파악이 다 끝났다. 내 집만큼은 아니지만 편하자면 집 못지않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아내는 크루즈 여행 내 자기가 공주가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평생 살림살이에 질려있었는데 호사를 누린다며 좋아했다. 아내는 "크루즈를 타던 날 누가 그러더라고요! 크루즈는 적응할만하면 하선해야 된다고"라며 많이 아쉬워했다. 난 호기롭게 "돈 모아서 다음에 한 번 더 타면 되지~ 뭐~그까짓 것!" 하며 아내를 달래 주었다.
갑판에 올라오니 어스름한 수평선 위로 푸른빛이 피어나고 있었다.
잠시 후 떠나온 열도의 먼바다에서 붉은 태양이 46억 년에 하루를 더하기 위해 성급히 떠올랐다. 가슴을 활짝 펴고 꺼져가는 마지막 생명처럼 한껏 공기를 들이마셨다. 망망 바다에서 맞은 새벽 공기는 민트 치약만큼이나 상쾌했다. 태양이 잿빛 구름에 싸인 바다를 뚫고 올라오자 하나 둘 사람들이 갑판에 모여들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저마다 여행의 마지막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크루즈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전날 저녁 보내고 남은 짐들을 가방에 챙겨 중앙 로비로 나왔다. 하선 순서가 뒤에 잡혀 있어 여유롭게 선내를 한 번 더 둘러보았다. 그사이 정이 들었는지 모든 것이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 보였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에 이끌려 갑판에 올라가 보니 저 멀리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륙도 사이로 부산항과 광안대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다시 고국의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며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며 사진을 찍느라 야단이었다. 그런 어르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 어르신들이 앞으로도 오래 건강하셔서 나중에 다시 한번 크루즈에서 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크루즈에서 하선해 짐을 찾고 주차해 둔 차까지 오면서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 항구 쪽을 몇 번이나 뒤돌아 보며 걸었다.
하지만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왠지 후련함 마음이 들었다. 미지의 무언가를 탐험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제껏 상상만 했던 그게 뭔지 다 안다는 우쭐한 마음이었을까!
아내는 집에 돌아와 짐 정리를 끝내고 소파에 앉더니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궁금해 뒤에서 슬쩍 들여다보니 글쎄 크루즈 여행상품을 찾아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아내는 그 무섭다는 크루즈 병에 걸려 버렸던 것이다. "아~ 여보~ 여행에서 돌아온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