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매일 둥근달이 떠 오른다!

by sinwolrang

살며 세 번 이사를 했지만 결혼 25년 동안 단 한 번도 아파트라는 공간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남들 사는 대로 살다 보니 그게 당연한 것이었고 맞춤옷이나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고 친숙한 삶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최적화된 아파트에서의 삶은 평범한 일상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의도치 않게 이번 추석처럼 긴 연휴를 맞아 긴 쉼표 안에 갇힌 채 장기간 집에 머무를 경우에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물론, 색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교외 나들이나 쇼핑을 위해 외출을 하기도 했지만 매번 그 긴 여백을 모두 채워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러는 인생의 보너스같이 주어진 연휴를 잘 활용해 평소 못다 한 일들을 처리하거나 미리 계획했던 일들을 하겠지만, 평범한 소시민 가정인 우리 집 상황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대게 이 삼일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지루함에 몸부림치다 못해 방바닥을 지렁이처럼 꿈틀 기어 다니며 긴 연휴를 보냈던 것 같다.


분명 몸은 쉬고 있는데 마음은 평소보다 더 조급하고 불안해지기 일쑤이고, 틀어진 일상의 리듬 때문에 컨디션 난조에 이어 '일하는 것도 힘들고, 쉬는 건 더 힘들다'라는 생각 때문에 무기력함에 빠졌던 경험도 있다. 일종의 명절 증후군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우리 가족에게 대 변혁의 시기가 여명처럼 조용하지만 강렬하고 확실하게 찾아왔다.


10여 년 전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수도권을 떠나 지방 중소도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마음은 늘 "이제 그만 살자~ 아파트에~" 하고 외치고 있었지만, 여전히 몸에 착 감기는 옥색 비단 치마 같은 아파트를 포기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지방에 내려와 이 삼 년 아파트에 살면서 평소 꿈꾸었던 나만의 집을 짓기 위해 아내와 둘이서 주말마다 발품을 팔아가며 땅을 보러 다녔었다. (여기서 집 지은 얘기를 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차 후에 따로 정리해 올리기로...)


이젠 아무리 긴 연휴가 주어져도 시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막상 집을 짓고 보니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끝이 없는 영속된 일처럼 반복적으로 계절과 시간, 기후와 환경에 따라 계속해서 재 창출되었다. 간혹 마음을 유혹하는 해이함과 조그마한 방심은 해야 할 일의 양과 강도를 더할 뿐이었다.


하지만, 집과 마당을 가꾸는 일이 영 고되고 못할 일만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먼저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려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었고, 작은 화단 한켠에서 외떡잎과 쌍떡잎이 자라며 꽃이 피고 열매가 되는 모습에 찔끔 눈물이 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이번 추석 연휴에 있었던 얘기를 해야겠다.

집을 지을 당시 빠듯한 예산 때문에 마당 조경은 잔디를 깔고 나무 몇 그루 심는 것으로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먼저 집을 지어 살던 이웃이 조경을 제대로 하려면 '억'은 들여야 한다는 엄포에 주눅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집 지어 산 지 4년이 지나니 다시 슬슬 무언가 손을 대고 싶어 지기 시작했다.

전부터 지인 집 마당에 벽돌을 둥글게 깔아 멋을 낸 데크를 눈여겨보아 왔던 터라 "그래, 이번 추석 연휴에 마당을 한 번 뒤집어 업자, 연휴가 기니 시간은 충분해~", "딸아이 손까지 빌릴 수 있다면 연휴 기간 내에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족들에게 알렸다. 다들 별 불만이 없어 보여 연휴가 시작되자 서둘러 벽돌과 부자재를 구매해 버렸다.

'800장'

우리 가족이 연휴 내 손에 붙들고 씨름했던 벽돌 양이다. 벽돌을 마당으로 나르기까지는 가족들 모두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잘 따라와 주었다. 하지만 4년 동안 깊이 뿌리내린 잔디를 힘들게 걷어내고 흙을 채우는 작업이 이어지자 딸아이 동공이 흔들리더니 얼굴이 허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평생 아파트에 살면서 몸 쓰는 일 한 번 없이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고 자란 딸아이가 감당하기엔 며칠 동안 계속된 이 일이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손놀림이 눈에 띄게 느려지고 표정이 굳어졌을 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를 함께 했다.


안락한 연휴를 포기한 우리 가족의 땀과 고생의 결과물은 대 만족이었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듯 빨간 벽돌들이 둥글게 둥글게 놓여있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가족들 얼굴에 웃음도 따라 둥글게 피어났다.


아내는 "와~ 우리가 이걸 해냈다니~"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딸아이는 "씩~" 하며 싱겁게 웃고 말았지만 속으론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듯 보였다. 딸아이를 달래주려 "우리 집에 다시는 이런 대 공사는 없을 거야~"라고 호언했지만 어디 사람 사는 일에 단정 지을 것이 있겠는가!


매년 명절 연휴가 되면 지루함에 몸부림치던 우리 가족에게 이번 추석 연휴는 특별했던 추석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례적인 긴 가을장마 때문에 추석 밤하늘의 둥근 보름달은 볼 수 없었지만 대신 우리 마당에 새롭게 들어선 원형데크가 풍성한 한가위 둥근달처럼 둥실 떠올랐다.


이번 에피소드는 오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 가슴에 달린 금관훈장이 되어 오래도록 우리가 한 가족임을 기억하며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할 것이다.

내년 추석엔 우리 집에 두 개의 둥근달이 덩실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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