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했던 미안함에 대하여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학교와 집이 멀어지면서 나는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단순하게 학교가 멀어져서 전학을 가게 된 일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전학이 내 삶을 크게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새 학교에서 불안감 없이 원래대로 시원하고 털털한 성격 덕분에 금세 친구들과 어울리며 적응해 갔다.
등교깃도 익숙해졌고,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지면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학교생활이 익숙해져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던 어느 날, 내 눈에 한 아이가 유독 들어왔다.
점심시간에도 혼자서 조용히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도 혼자서 눈치를 보는 듯한 아이였다.
궁금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물었다. "저 아이는 어떤 애야?"라고 물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속삭이듯 말을 했다."그 애 머리에서 송충이가 나왔대."
궁금해진 나는 친구들에게 정말 그걸 직접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직접 보진 않았어, 그냥 들었어."였다.
직접 본 적도 없는데 그렇게 말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신경 쓰였다.
왠지 그 말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고, 그래서였는지 나는 그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며칠 후에는 함께 밥을 먹으며 웃는 사이가 되었고, 그 아이가 ‘왕따’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실 분위기가 달라졌다.
함께 웃고 말하던 친구도 나를 쳐다보지 않고, 무시하고, 쉬는 시간에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었다.
그 아이와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그 아이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만 왕따가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비겁한 마음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가 외면당할 때 나도 눈을 피했고, 친구들이 부르면 아무렇지 않은 척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렇게 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원래 활발하고 장난이 많은 아이였다.
크게 웃고, 솔직하게 말하는 성격이라 때로는 교실에서 튀어 보였고, 그게 누군가에게는 거슬렸던 것 같다.
그 일로 일진 무리에게 괜히 찍혔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시선이 점점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눈이 마주치면 괜히 긴장됐고, 등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자꾸 나를 향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사소한 말다툼이 빌미가 되어 놀이터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겁이 났지만 가지 않으면 더 큰일이 생길 것 같았다.
놀이터에 모여 있던 아이들 사이로 들어서자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말이 오가던 순간, 누군가 내 다리를 툭 쳤고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는데, 그 장면이 그대로 놀이터 CCTV에 찍혀 있었다. 나도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어를 하고 싸우는 장면이 cctv에 기록이 되었다.
며칠 뒤, 그날의 일이 부모님 귀에 들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상이 전해졌고 모든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아이들은 집으로 불려 와 사과했고, 그들의 부모님도 전화를 걸어 정식으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부모님은 아이들이 직접 진심을 전하길 바랐고, 통화 속에서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들이 오갔다.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보였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사과를 받았다는 사실보다, 그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학교폭력은 그렇게 한 번의 사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그 무리를 지켜봤지만, 교실의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폭력은 멈췄지만 낙인은 남았고, 누가 잘못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그 일에 연루된 아이’로 나는 오래 기억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리면 괜히 나를 향한 것 같았고,
등 뒤로 바람이 스치면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학교폭력은 ‘해결됐다’는 말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사과나 훈계, 감시 같은 것들로는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일을 겪어본 사람만이 교실 안에 남아 있던 그 차가운 공기를 기억한다.
폭력보다 더 아픈 건, “이제 그만 잊어라”라는 말로 모든 걸 덮으려는 세상의 무심함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아이가 떠오른다.
조용히 밥을 먹던 모습, 어색하게 웃던 얼굴, 아무 말 없이 복도를 걸어가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내가 그 아이의 손을 잡아줬더라면 어땠을까.
그 아이의 세상도, 어쩌면 내 세상도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침묵이 나를 지켜줬다고 믿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침묵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이제는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그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미안하다고, 그때 네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너의 침묵을 외면했던 그 시절의 나를 이제는 조금씩 용서하고 싶다.
그리고 네가 남기고 간 시간들을 나는 글로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늦었지만 진심 어린 사과이자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나만의 방식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날의 기억은 내 안에서 조용히 남아 있다.
이제는 그때의 나와 그 아이, 어느 쪽도 미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겪은 일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나를 성장하게 만든 흔적이 되었다.
글을 쓴다는 건, 아마도 그때의 나를 다시 끌어안는 일이고
조금 늦게 배우게 된 용기를 기록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