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채로 자라는 중입니다 1
이 문장은, 어떤 찬란한 순간에서 나온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무너졌던 그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날 때쯤
내 안에서 가장 먼저 속삭인 말이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잘해야지”, “더 괜찮아 보여야지” 하고 살았다.
그게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렇게 지키고 지키다 보니 어느 날은 나조차 내 마음을 모르겠더라.
눈물이 나는데 이유를 말할 수 없고,
괜찮다고 말하는데 속은 텅 비어 있는 그런 날들.
무너졌다고 느낀 건 거창한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아주 평범한 하루였다.
그날도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끼리 자라고 했다.
조용한 밤에 홀로 앉아 멍하니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 말도 걸어오지 않는 그 정적 속에서
‘내가 괜찮은가?’ 하고 묻게 되었다.
처음엔 무너지는 것 같아 겁이 났다.
감정이 쏟아져 나올까 봐, 멈추지 않을까 봐,
내가 나를 감당하지 못할까 봐.
하지만 그 순간, 내 안에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무너지는 너, 그 모습도 괜찮아.”
그 말을 붙잡고 글을 썼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그저 내가 살고 싶어서 나에게 했던 말을 적었다.
진심이 묻어있는 문장들을 쓰자, 놀랍게도 누군가가 말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지금 날 위로해 주는 말이다.”
그때 알았다.
진심은 말이 되어 나가고, 말은 누군가를 일으킨다는 것을.
그리고 무너졌던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지금도 천천히 자라고 있지만
그 무너짐의 자리에서도 조용히 피어난 문장 하나를 꺼내본다.
그 무너짐조차, 아름답다.
나의 무너짐은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것이 아니었다.
차곡차곡 쌓여온 외면과 몰아붙임의 결과였다.
가족들이 놀랄 만큼, 나의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기억에도 남지 않을 만큼 평범했던 어느 날, 가장 조용한 순간에 그 일은 일어났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듯한 그 경험을, 나는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겉보기엔 평온하고 아무 문제없던 사람이 어떻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무너짐 속에서 발견한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오전에는 습관처럼 집안일을 하며 필요한 일들을 해냈고,
틈틈이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 애썼다.
오후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잘 놀았고,
다툼이 생기면 나는 그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곤 했다.
밤이 되어 모두가 잠든 뒤, 나는 소파에 조용히 기대앉아 표정 없이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 시간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순간이었다.
유일하게 움직이는 건 화면 위로 천천히 스크롤되는 손가락뿐이었다.
해야 할 일도, 부탁받은 일도 있었지만, 의지가 없었다.
이 무기력은 게으름에서 온 것이 아니라,
더 깊고 오래된, 무거운 감정의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것이었다.
그 고요 속에서 문득 떠오른 질문 하나.
“나는 정말 괜찮은가?”
그 질문은 공기 중에 떠 있다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어떤 사건이 아니라, 긴 시간 축적된 마음의 무게가 만든 울림이었다.
어릴 적부터 자존감이 회복되지 않았던 내가 있었다.
모호한 정체성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글을 써왔다.
무너진 채로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엄청난 두려움으로 나를 휘감았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 불확실성과도 싸워야 했다.
처음엔 저항했다. 내가 나를 감당하지 못할까 봐, 감정을 다룰 수 없게 될까 봐.
가족을 지켜야 하는 내가 나조차 지키지 못하는 현실이 두려웠다.
부모란 언제나 침착하고 효율적으로 일상을 관리해야 한다는 암묵적 의무가 있었다.
그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나는 부모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실패한 것만 같았다.
그 역할들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다.
두려움이 나를 삼키려 할 때, 내면 어딘가에서 작고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무너지고 있는 너조차도 괜찮아.”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나는 외면해 온 나의 그림자를 더는 약점이라 여기지 않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 안아줘야 할 때임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나는 휴대폰을 쥔 채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기억을 더듬어가며 마음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 글들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다.
작품을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숨을 쉬고 싶어서,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말로 꺼낼 수 없었던 진실, 마음에 담아두기엔 너무 벅찼던 기억들을
조심스레 한 문장씩 꺼내었다.
글쓰기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가장 진실한 진정제였다.
감정과 기억의 날 것 그대로를 꺼낼 때마다, 마음의 무게가 조금씩 덜어졌다.
무너진 나의 한복판에서 쓰인 글들은
‘왜 내가 그렇게 아팠는지’를 보여주었다.
오래전 마음속에 숨어있던 진실이, 한순간 떠올라 그대로 표현되었다.
그 글들이 내면의 혼란 속에서도 나 자신과의 연결을 놓지 않게 해 주었다.
글은 생명줄이자, 회복의 다리였다.
나는 조심스레 내 마음 조각들을 짧은 글로 나누기 시작했다.
나만의 아픔이라 여겼던 경험들이, 조금씩 ‘공동의 언어’로 바뀌어갔다.
사람들은 말한다. 약점은 숨기거나 극복해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은 달랐다.
가장 약해진 순간, 결점이라 여겼던 마음을 솔직히 드러낼 때,
가장 진한 연결과 공감이 일어났다.
무너짐을 허락하는 시간과 공간이 있었기에
나는 나의 깊은 두려움과 마주할 수 있었다.
무너짐은 끝이 아니었다.
인생 전환점의 문턱이었다.
나는 무너졌고, 그 무너짐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은 약해졌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그 경계를 지나, 조용한 여파 속에서 나는 나의 뿌리를 발견했다.
불완전함은 결핍이 아니라 인간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무너짐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상의 압박이 쌓여 결국 무너져 내릴 때,
그 조용한 순간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다.
세상의 소음이 잦아든 밤, 고요한 정적 속에서야 비로소
나는 우리 자신의 약함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것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변화가 시작된다.
처음엔 부정하고, 숨고, 저항하더라도 말이다.
희망은 가장 조용한 순간에 무너짐 속에서 건져낸 작은 말들이 나의 앞길을 비추었다.
그 말들은 때로, 다른 누군가의 마음도 비추는 빛이 되었다.
진정성은 나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닿는다.
가장 약한 순간을 말할 수 있을 때,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된다.
무너짐은 가장 본질적인 것을 드러낸다.
그 속엔 이해, 공감, 성장의 잠재력이 살아 숨 쉰다.
가장 약하다고 느낀 순간, 나는 새로운 문장을 쓸 수 있었다.
그 문장들은 정직함과 취약함 속에서 희망의 씨앗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삶 속에서, 나는 안다.
평범한 날들 속에서도 언제든 반짝이는 아름다움은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