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채로 자라는 중입니다 3
나는 가끔, 내가 쓸모없다고 느끼는 날이 있다.
작은 일조차 해내지 못했거나, 누군가에게 폐가 된 것 같거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느낌에 자신을 괜히 짐처럼 여긴다.
하루를 버텼을 뿐인데, 그 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나라는 존재 자체가 미안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럴 때,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누군가 이렇게 말해줬다면, 아마 울었을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냥 ‘있어 줘서’ 기쁘다고.
이 말을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날의 너,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포기하지 않고 버텨줘서 정말 다행이야.”
이제는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오늘도 살아가느라 애썼어.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빛나지 않아도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어.
그 존재만으로도 이 세상에 따뜻한 증거 하나가 되고 있다.
그러니, 다른 어떤 이유 없이,
그냥 살아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와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이 문장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지낸 시간, 나는 내가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고 느꼈다.
돌아서면 집안일, 또 돌아서면 식사 준비. 쉼 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아지는 건 없고, 오히려 놓치는 것만 늘어갔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충족시키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무기력했다. 누가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혹시 내가 짐이 된 걸까?’
몸이 아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쓸모없다’는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숨은 쉬고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
"나는 왜 사는 걸까?"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머릿속에는 안 좋은 결말만이 떠올랐다.
아무도 모르게, 내 안에서는 조용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걱정을 안기고 싶지 않아 두려운 마음을 침묵으로 감췄고,
그 침묵은 점점 더 깊은 고립감으로 번졌다.
심지어 누군가 "잘될 거예요", "힘내세요" 하는 따뜻한 말조차 나에게는 공허하게만 들렸다.
그때 나는 살아보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도 보지 않을, 읽지 않을 것 같은 글을 블로그에 조심스럽게 적어내려 갔다.
죽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사는 건지.
얼마나 힘들면 이런 말이 나올까...
- 신유아트워크 네이버 블로그 내용 중 '산다는 것' (2014.02)
사실, 나는 완전히 전업주부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고 있었다.
오랜 꿈이었던 만화가라는 일을 포기할 수 없어, 첫째 아이가 한 살일 때 기회를 덥석 잡았다.
매달 마감에 몸과 마음을 갈아 넣었다.
아이를 달래며, 밥을 먹이며,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고, 재우고 나서야 겨우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면 그 후 이틀은 회복이 필요했다.
그 사이 집안일은 엉망이 되기 일쑤였고, 그 모든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기에 나는 조용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2년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아픔에서 조금씩 회복되던 시기
친구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그 말을 그때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간의 고군분투가 떠오르며 눈물이 차올랐다.
의무감과 책임감에 짓눌려 있던 내게 그 말은 작은 해방 같았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정받을 만한 가치라는 걸,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늘 생각했다.
"내 어려움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너무 외로웠다.
"나만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부모님께도, 친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내 가족까지 불행해질까 봐, 말하지 못하고 삼켰다.
그때 또다시 핸드폰을 켰다. 블로그를 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이 괴로움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진짜 살 수 없을 것 같았기에.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적되 마무리는 희망을 담고 싶었다.
고립 속에서도 사라지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글쓰기는 자존감이 낮았던 내게 살기 위한 희망의 동아줄이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났고 그렇게 하나둘 쌓아가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늘려갔다.
괴로운 것들이 와도
슬픔이 와도
좋은 것들을 봐야지
아픔이 와도
예쁜 것들을 봐야지
괴로운 것들이 와도
무너지지 않도록ㅡ
- 신유아트워크 네이버 블로그 내용 중 '괴로운 것들이 와도' (2022.02)
살아남는 데는 조용한 힘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기념비적인 성취가 된다.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세상에 나와 말하는 것. 그건 엄청난 용기다.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살아낸 흔적만으로 사람은 빛난다.
사랑받을 자격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때문에 충분하다.
사랑과 인정을 행동으로, 노력으로 얻으려 하면 실망하게 된다.
기대는 상처가 되고 상처는 관계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조건 없이 받아들여졌다고 느낄 때,
우리는 더 많이 베풀고 더 이상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자유롭게 성장하고 진정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존재 그 자체가 이미 따뜻함의 원천임을 기억한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글을 남기는 것은 내 안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자,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자신 안의 빛을 발견하도록 돕는 여정이 될 것이라는 것을.
나라는 사람 그 자체가 감사와 사랑의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깨달음이든 한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다.
기록하고, 돌아보고, 조금씩 나를 보살피며 자란다.
"너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빛난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따뜻하다고, 이제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