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있었던 봄으로 놀러가자. 우리가 입을 맞추는 사이 만 그루가 넘는 나무들이 동시에 꽃을 피우고, 하늘에 고갤 내밀고 있던 보름달은 부끄러워 눈을 온전히 감아버리려다 그래도 궁금했는지 실눈을 살짝 뜨겠지. 감은 눈만큼의 달빛이 속살대며 속눈썹에 흘러내릴 때에 바람 한 자락이 알 수 없는 곳에서 불어와 꽃이 잔뜩 핀 잔가지를 토닥토닥 흔들면 연극의 정점, 그 장면처럼 꽃잎들이 비처럼 내릴 것이고 그 아래에서 우리는 사랑에 빠지게 될 거야. 이것은 오직 생명의 절정을 틔워낸 힘만이 가능한 궁극의 주문이야. 다시는 만나지 않겠노라 맹세했던 남녀 한 쌍도 다시 한 자리에 불러 모아 홀린 듯 서로를 바라보게 하는. 비록 어둠을 햇빛이 모두 먹어치울 즈음엔 꽃도, 사랑도 지겠지만 하룻밤만이라도 무아지경의 사랑, 그 장면 속에 있을 수 있다면 꿈에서 깨어나 아침을 맞는다 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아. 한 번만. 한 번만 더 절정을 재연하고 싶어. 그러니까 우리, 언젠가 있었던 우리의 봄으로 놀러가자. 햇살이 따뜻했던 4월 언저리에서 기다릴게. 늦어도 좋으니 꼭 와. 알겠지? 주인공이 빠지면 결코 재연될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