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증명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나는 너에게 한 장을 달라고 했고 너는 내게 잠깐의 장난을 치다 순순히 건네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곤 한동안 아주 소중히 지갑 속에 간직하고 다녔다.
웃는 것도,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닌 그저 무표정으로 사진 속에 가두어진 너의 얼굴은 한때 내가 수도 없이 봤던, 그리고 입을 맞추었던 애정의 대상이었다. 평소엔 안경을 쓰고 다니던 너는 증명사진을 찍을 때, 그리고 나와 있을 때 가끔 안경을 벗곤 했다. 나는 감추고 다니는 너의 안경 너머 모습까지도 퍽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내가 사랑에 빠졌다는 증명의 근거와도 같은 것이었다. 너의 감은 눈가 코 언저리, 귀엽게 내밀던 입술과 손가락으로 찔러대보던 두 뺨이 내가 입을 맞추기 위해서만 오롯이 존재하던 사랑스러운 오후들.
너를 보내고 나는 사진을 세 번째 서랍에 넣었다. 그 서랍은 기억들의 무덤 같은 곳이었다. 보내지 못한 편지, 이제는 의미가 없는 편지, 이제는 절교한 친구들과의 스티커 사진 등이 한데 뒤엉켜서 아마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곳에 너의 사진도 같이 잠이 들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세 번째 서랍을 열지 못한다. 어쩐지 너를 묻은 무덤마냥 느껴져서 너의 기억을 겨우 눌러놓고 이제 좀 다시 살아가보려 하는데 혹시나 또 많이 보고 싶을까봐, 너에게 돌아가고 싶어질까봐, 그렇게 또 실수를 반복할까봐 나는 서랍을 열지 못한다. 그깟 증명사진 한 장이 뭐길래. 그깟 너라는 한 사람이 뭐길래 말이다.
한때 모습이 이러했다는 것의 가장 정확한 증거가 되어주는 것 말고는 어떠한 의미도 없는 규격화된 크기의 사진 한 장 안에 갇힌 너는 얼마 안 되는 우리 만났던 시간들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만을 무표정한 얼굴로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