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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별 Mar 26. 2016

액자


마음 구석의 어느 외진 방에 몇 개의 얼굴 사진을 액자에 가지런히 꽂아 걸어뒀습니다. 제각기 다른 생김새를 지녔지만 모두 웃는 표정이라는 사실은 공통점입니다. 내가 가장 한 시절의 연인을 사랑했던 순간을 각각 한 장씩 걸어 두었으니 당연한 일일까요.
한 시절의 사랑이 웃는 모습은 두고두고 봐도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이 방에 기분이 머무는 날에는 어쩐지 울고 싶어집니다. 웃는 모습들 속에 있는데도 울적하기만 한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이승에서 웃으며 만날 수 없을 사람들의 기억 속 유일한 얼굴들이 빛이 바랜 채 세월을 자꾸만 들이마시며 낡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첫사랑의 이목구비가 지워졌습니다. 나는 그의 텅 빈 얼굴을 이제 채워넣을 수 없습니다. 죽을 만큼 슬프지는 않으니 어쩌면 곧 액자 하나의 자리는 썩어 문드러지고 그렇게 영원히 없어진대도 나는 나를 잠식하려는 슬픔의 포옹에도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겠지요. 그것도 아주 해맑게 웃으면서 말입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첫 이별 후부터 내 삶은 하루하루 기적의 산물입니다. 이 사랑이 끝나면 나는 죽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나는 몇 해가 지난 뒤에도 멀쩡히 살아 있으니까요.
첫사랑의 바로 옆에 있던 첫 연인의 눈썹이 지워지는 것을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습니다. 액자 하나, 또렷하던 기억 하나 잃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아주 잠깐 목은 메일지 몰라도 다만 그뿐입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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