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선택하기 위해 놓친 무언가. 혹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포기해버린 것. 내가 흘려버린 꿈은 무엇일까.
미술? 초등학생 때부터, 아니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내 꿈은 화가였다. 미술 전공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초등학생 때 각종 상을 받고 대회에 나가며 당연히 미술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의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한 나는 미술을 포기했다. 그 당시 그림 그리는 것이 지긋지긋했고 너무 끔찍했다. 하지만 10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가끔 그림 그리던 내가 생각날 때가 있다. 나의 첫 꿈이었던 미술은 여전히 나에게 첫사랑 같다.
인테리어? 얼떨결에 들어간 대학에서 인테리어를 전공했으나 전공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학교를 다녔다. 자퇴를 하지 않고 한국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갔다면, 지금 유행인 인테리어 업계에 발을 담글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인테리어에 대한 열정이 부족했기에 흘려보낸 꿈이란 표현엔 부적절해 보인다.
한국에서의 삶? 친구들과 노는 것이 가장 좋았던 나는 과감히 이들과의 시간을 포기했다. 어느덧 내 20대 중 한국에서 보낸 시간보다 스페인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아졌다. 말도 안 되는 농담, 실없는 웃음,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머리 아픈 숙취와 해장, 맛집 투어, 아무렇게나 들어가는 옷가게, sns에 올릴 카페, 조조 영화, 한강 바람을 맞으며 타는 자전거, 호구 같은 연애. 스페인에 오면서 난 내 20대의 이것들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4년 전 내가 스페인행 비행기에 타는 것을 포기했더라면, 한국에서의 평범한 생활에 안주했더라면. 나는 내 흘려버린 꿈에 대해 죽을 때까지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놓쳤을 더 넓은 세상, 나를 마주할 시간, 새로운 언어, 전혀 다른 시각의 생각, 독립성, 축구 기자라는 오랜 꿈에 대해.
이것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꽉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칭찬하고 싶다. 가끔 이곳에서의 생활을 모두 포기하고 달려가고 싶지만, 내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나의 과거를 후회한다면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게 될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