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시작해보자 마음 먹은 날
커피를 참 좋아했다. 혼자 마시는 커피는 카페인 특유의 알싸함과 고소함에 흠뻑 취하는게 좋았고, 함께 마시는 커피는 이야기의 풍미를 더해주어서 좋았다. 늘상 다이어트를 마음에 품고 사는 1인이자 커피로는 배 채우지 말자는주의라 언제나 커피 선택은 아메리카노, 아무리 배 부르게 식사를 해도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배부름의 단계를 10에서 4정도로 떨어뜨려주는 마법을 경험했기에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사랑했다. 언젠가 모임할 때 선배들이 커피가 아닌 차를 주문하며 "이제는 커피 못 마셔. 잠을 못 자."라는 말을 듣고, 아득한 나이듦의 잡히지 않는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그 슬픔이 나에게로 와서 불면증이 되었다.
오후 1시 이후에 마신 커피 1잔은 잠드는 데 쥐약이다. 어느 순간부터 왜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지? 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면 어김없이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던 내가 떠오른다. 예전 일밤에서 하던 인생극장처럼 두 갈래의 선택길에 선 것이다. 아메리카노냐, 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할 것도 없이 나는 잠을 자야 했다. 다음 날 출근인데, 잠이 오지 않는 밤은 너무나 큰 괴로움이다.
그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나는 평일에는 사랑하는 아메리카노와 작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원두의 향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한 잔씩 마실 때가 있다. 어제 교무실에서 쪽지가 왔다. 외부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맛있는 원두로 내린 커피가 많이 남이 있으니 어서 와서 텀블러 담아가시라는 손짓. 나는 맛있는 원두라는 말에 취해 텀블러 가득 커피를 받아와 오후 내내 홀짝 홀짝 마셨다.
연구학교 지도안을 써야 하는 오후, 커피 한 잔 덕분에 꽤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밤을 꼬박 뜬 눈으로 뒤척였다. '아, 자야 하는데 잠이 안온다.', ' 내가 지금 자고 있는 것인지 꿈을 꾸는 것인지 모르겠다.' 의 상태를 오랜만에 경험했다. 그리고 꿈 속에서 나는 어제 쓰던 연극 지도안으로 공개 수업을 했고, 시절 인연이었던 지금은 불편한 사이가 되어버린 동료 교사가 내 수업을 보러 왔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불편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좋아하는 커피 한 잔에 숙면이 날아가버리고, 시절 인연의 꿈 등장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고, 피곤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했다. 피곤하고 화나는 화요일의 시작일 수 있는데 문득 글을 쓰고 싶었다. 좋아하지만 마음껏 마실 수 없는 커피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기록해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매일 글을 쓰자고 다짐했던 내가 떠올랐다.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고, 좋아하는 것과 작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쉽지 않기에 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겠지. 매일 아침 글 한 편, 다시 한 번 시작해봐야겠다. 가끔 커피 한 잔으로 밤잠을 통을 날려버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날은 호박보리차와 함께 해서 잘 자는 편이다. 글쓰기도 그렇게 해보자. 글의 내용과 분량에 관계없이 꾸준함의 나날을 만들어 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