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잃다. 해방인가 아니면 박탈인가.
몇 년을 지속한 코로나 속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왔었다. 한편으론 다들 일주일 혹은 그 이상 노동 현장을 떠나 '잘 앓을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처럼 보여 부럽기도 했다. 물론 또 한편으론 내가 좀 특별한 존재인 건가 싶은 생각에 나중에 몰래 연구소로 끌려가 코로나 관련 생체 실험을 받지 않을까 하는 심도 깊은 망상도 해배곤 했었으나 결.국. 나 역시 코로나를 피해가지 못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코감기와 옅은 목감기에 적당한 비음과 저음이 섞인 목소리, 내 전여친이 그렇게 사랑했던, 일 년에 몇 번 들을 수 없는 바로 그 목소리로 수업을 조금 하고 났더니 목은 조금씩 잠기기 시작했고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그날 저녁 약속을 파할 수는 없었다. 나보다 앞서 코로나에 걸렸던 동료 선생님의 격리 해제를 축하하는 식사 자리만큼은 아무리 피곤해도 포기할 수 없는 법.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진한 커피향이 진동했을 커피숍에서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요 며칠 함께 얼굴을 맞대고 회의를 하고 밥을 먹었던 분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코로나 검사 실시. 결과는 양.성.
냄새로부터의 해방?! 아니면 자유 박탈!?
머리 속에만 있던 매뉴얼에 따라 학교에 이야기를 하고 바로 격리 시작. 목소리가 남아있을 때 온라인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이틀 내내 수업 영상을 찍고 아이들이 해야 할 과제를 업로드했다. 이제 맘껏 앓을 일만 남았다. 내 아픔에 집중하리라, 나라와 직장이 허락해준 이 '아픔의 휴가'를 온몸으로 만끽하리라. 쾌재로다! 그렇게 하루, 이틀... 뭔가가 내 뒤통수를 묘하게 간지럽히는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은 몸상태임에도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데 그게 뭔지 정말 모르겠는 그런 기분.
'그게 뭐지...'
더 깊이 놓친 걸 생각하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원두를 갈기 시작했다. 곱게 간 원두를 여과지에 넣고 뜨거운 물을 고요하게 따라 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뒤통수가 딱! 냄새가 나지 않는다. 막힌 코도 어느 정도 뚫려서 숨을 쉬는 것도 괜찮아졌는데 정작 중요한 '냄새'를 나는 전혀 맡을 수가 없었다. 으레 버릇처럼 켜놓던 향초에서도 향내가 나지 않았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함께 사는 고양이 녀석의 묵직하고 그윽한 뚱내음이 나지 않았던 것도 떠올랐다. 날이 따스해지면 올라오던 하수구 냄새도 요 며칠 잠잠했었는데 사실은 잠잠했던 게 아니었다. 냄새는 여전히 존재했으나 내 코가 그 냄새를 빨아들이질 못했던 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