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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Mar 23. 2023

냄새를 돌려달라구!!

너를 껴안기로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코감기조차도 많이 앓아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무리 없이 숨을 쉴 수 있는데 냄새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했을 뿐 일상에 아주 큰 변화는 없었다. 감사하게도 후각 말고는 나머지는 다 정상이었으니까. 특히 미각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그저 어떤 음식이든 냄새가 나지 않을 뿐이었다. 미친 듯이 불편한가?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불편함보다는 편함을 먼저 느꼈으니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방은 싱글이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집에 속해 있다. 딱 하나 냄새만 빼고. 내가 오늘 저녁 찌개라도 끓이고 있으면 분명 딱 붙어있는 양쪽 이웃집에서는 내가 무슨 찌개를 먹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냄새만 맡고도 옆집에서 생선을 굽는지 고기를 굽는지 혹은 계란말이를 부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다. 어디 그뿐인가. 봄과 여름에는 꼭 하수구 냄새가 함께 올라오곤 한다. 냄새에 아주 민감하진 않아도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냄새를 잃고 나서는 이런 냄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온갖 악취들이 나에게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는 완벽하게 안전한 상태인 셈이다. 


 아, 또 하나 자유로워진 것 중 하나는 울 동거묘 레오의 똥 냄새로부터다. 함께 산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이 녀석의 똥 냄새가 향기로운 적은 사실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매일 하루 한 번 이상은 이 녀석의 화장실을 치워줘야 하는데 그게 방금 싼 똥인 날에는 정말 숨을 30초 정도는 참고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녀석의 원초적인 내음새까지는 막을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후각을 잃고 나서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문득, 냄새가 없어서 행복한가... 질문을 던져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쯤 후각이 회복되는지를 알아보고 다닌다. 격리 기간이 끝나면 이비인후과도 한 번 다녀오려고 병원도 알아둔 상태이다. 


 바로 오늘 아침, 우리집 동거묘 레오의 똥을 치으면서 문득, '나는 지금 냄새가 안 나서 행복한 건가?' 하는 물음이 생겼다. 이 고민을 꽤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고민하기 위해 일단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말이다. 커피 한 모금을 내 입에 흘려 넣기도 전에 결론은 나 있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악취로부터의 자유는 곧 다른 향기들을 맡을 권리의 박탈을 의미한다. 갓 볶은 원두의 향내, 다 마시고 남은 원두 찌꺼기를 레인지에 데우면서 나는 진득한 커피 탄내도 나는 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뿌린다는 향수조차도 나는 그 향이 범접하지 못한다. 제자들이 사준 핸드크림의 고급스러운 향기도, 방 안을 가득 메우는 향초의 내음새도 나에게 의미 없는 짓거리가 된다. 레오의 발바닥에서 나는 꼬순내도 나는 함께 잃어버린 셈이다. 

 

 내 삶에서도 그랬다. 방해가 되는 무언가를 없애버렸다고 해서 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거추장스럽고 불편하지만 그게 있기 때문에 얻는 '의미'들도 있으니 말이다. 때론 거북하고 거추장스럽지만 끝까지 꼬옥 껴안고 가야 할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격리 기간이 끝나면 바로 이비인후과를 들러 약을 한 번 써보기로 했다. 냄새를 얻게 되면 나는 또 옆집 고기 굽는 냄새와 우리집 냥이의 똥 냄새와 지린내 그리고 하수구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냄새들을 맡게 되겠지. 그래도 아주 잠시는 그 냄새들이 무척이나 반가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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