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함께할게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일본 단기 선교를 나갔던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여럿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하시던 이야기가 있었다. 참 아픈 이야기였다.
“우리나라도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일본인들은 유독, 재난의 상황을 병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려는 듯해요. 그냥 감춰버리려고 하죠. 재난에서 살아남은 분들이 버젓이 옆에 살아 있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일을 지워버리려고 해요. 그러니 살아남은 게 죄가 되는 일들이 일어나곤 해요. 어떤 분들은 그 죄인의 삶을 당연히 여기기도 하구요. 참 서글프고 아픈 일이죠.“
신카이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을 시작으로 날씨의 아이 그리고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기억하고 잊지 않음’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너의 이름은.에서는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날씨의 아이에서는 바다였던 도쿄를 떠올린다. 그리고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동일본 대지진 사건을 기억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을 위로하는 굿판을 벌이고 있었고 이 굿의 핵심은 이번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자들과 그 땅을 살았던 모든 존재들에 대한 위로일 것이다.
문을 닫는 신성한 여정
かけまくもかしこき日不見ひみずの神かみよ。
아뢰옵기에도 송구한 히미즈의 신이시여.
遠とおつ御祖みおやの産土うぶすなよ。
머나먼 선조의 고향 땅이여.
久ひさしく拝領はいりょうつかまつったこの山河やまかわ、
오랫동안 배령받은 산과 하천을,
かしこみかしこみ、謹つつしんでお返かえし申もうす。
경외하고 경외하오며 삼가 돌려드리옵나이다.
문을 닫기 위한 주문이 작동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그 땅을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듣는’ 것이다. ‘들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내 귀를 당신에게 향하겠다는 겸손함을 기반으로 한다. 작품 내 재난의 문이 열렸던 곳들은 과거 실제로 대형 재난이 일어났던 곳들이다. 그곳을 살았던 사람들 여전히 그 재난의 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신카이 마코토가 행하는 의식의 핵심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들어줌의 의식은 그 지역의 땅과 산천에게도 향한다. 인간이 누리는 이 땅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신에게 배령받은 것’임을 잊지 않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경외하고 경외하며 돌려드리는 것으로 ‘문을 닫는 의식’은 끝을 맺는다. 재난의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 살아남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땅 자체에게 바치는 겸허한 기도는 그래서 더욱 마음에 오래 남는다.
이런 치유의 여정은 작품 초반에는 무당으로 보이는 ‘토지사’에 의해 시작되지만 실제 이 굿의 집전자는 재난의 피해자였던 ‘스즈메’ 당사자이다. 스즈메에게 삶은 너무나 가볍다.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는 그녀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이미 ‘저세상’을 한 번 경험했던 그녀이기에 삶은 언제든 무너지기 쉬운 얇은 유리일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삶은 늘 서있기보다는 무너짐에 가깝다. 그녀의 용기 있어 보이는 선택들은 사실 ‘삶의 의지’를 잃어버려 언제든 죽음을 껴안으려고 몸부림치는 자살자의 위태로움을 닮았다. 어쩌면 이 신성한 굿판을 집전하는 동시에 가장 많은 위로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스즈메 바로 그녀일 수밖에는 없는 셈이다.
붉은 실이 이어주는 인연
그녀에게 삶을 삶답게 만들어주는 동기, 이 위험천만한 위로의 여정으로 뛰어들게 하는 동기가 ’사랑‘이라는 점은 어떤 면에서는 뻔하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클래식‘한 감독의 주제 의식이다. 삶을 삶답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니. 작위적인 면이 없지 않으나 또 마음 한켠에서는 그 작위적인 낭만성이 작품을 무겁지 않게 이끌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붉은 실의 인연은 특히 이 봄날 사람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눈여겨보게 되는 건 스즈메가 여행 중에 만나는 다양한 ‘인연’들이다. 스즈메의 가출을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그대로 껴안아주려는 사람들의 따스한 선택들은 스즈메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붉은 실의 인연’들이다. 스즈메의 실질적인 보호자인 이모와 달리 무조건적인 헌신과 봉사로 스즈메를 대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편안한 쉴 곳과 먹을거리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그녀에게 ‘할 일’을 제공한다. 그 ‘할 일’들을 스즈메는 거리낌 없이 함께하며 오히려 이모와 있을 때보다 더 편안함을 느끼는 건 의미심장하다. ‘무관심’과 ‘지나친 호의’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스즈메를 초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우리들은 어떠한 이웃‘이어야 하는가를 배우게 된다.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내 삶의 터전으로 그 사람들을 끌어들여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숙제라면 숙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