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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May 04. 2023

영화 브로커,

너에게 가족을 주고 싶어. 

 보육원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달라는 목사님의 요청에 나는 호기롭게 시작했다. 학원 강사 8년, 대안학교 교사 13년이면 누군가의 멘토가 된다는 거,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자부했었다. 여기에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붙으니 내가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이 내가 만나는 아이들과 다를 거라는 건 편견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 속에서 처음 녀석과 만나고 와서, 


그날 밤은 잠에 들지 못했다. 




 애를 제일 팔고 싶은 건 나였나봐


 어젯밤 영화 브로커를 다시 보면서 꽤 여운이 남았던 대사는 형사인 수진이의 ' 제일 팔고 싶은  나였나봐'였다. 누가 봐도 아이를 팔아넘기려는 건 상현이와 동수 그리고 우성이의 친엄마인 소영이지만 그 속내를 보면 극 중에서 우성이를 가장 걱정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건 아이러니하다. 물론 이게 가능했던 출발점은 마흔 명 중 한 명이기를 바라며 다시 찾아온 아이 엄마 '소영'의 선택 때문이었다. 이 소영이의 등장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들을 넘겼을 상현이를 변화시켰고 보육시설이 아닌 진짜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었을 동수에게도 '본인이 아버지가 될 여지'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사건 해결의 도구로만 바라보려 했던 수진이로 하여금 유사 가족의 중심에 서게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짓게 만들었다. 


 영화 속 이야기만 본다면야 해피엔딩에 가까운 결말이지만 결국 이 이야기도 마흔 명 중 '한 명'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서른아홉 명의 아이들은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인 가족을 경험하지 못하고 보육 시설에서 보내게 된다. 보육원 아이들이 세 명이 빠지면 매달 450만 원이 적자가 나는 걸 걱정하는 삼대째 내려오는 원장님의 한숨소리가 차갑기만 하다. 그마저도 국가가 정한 나이가 되면 떠나 '독립'을 강요받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혼 후 딸과의 만남도 불가해진 상황에 놓인 상현이, 마흔 명 중 자신은 단 한 명이 될 거라고 믿었던 보육원 출신 동수, 성매매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가짜 엄마 밑에서 착취를 당해왔던 소영이까지 그들은 본능적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우성이에게 필요하다는 걸 안다. 영화를 보는 '우리'도 그걸 알고 있다. 때론 정답을 안다고 해서 그 정답대로 뭔가를 만들어갈 수는 없는 터. 현실은 꽤나 외롭고 차갑고 냉혹하다. 




 보육원 녀석의 멘토가 되어주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나는 그밤 그리고 지금까지 주욱 많이 흔들리고 있다. 녀석에게 필요한 건 멘토가 아니라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면서 보호받아야 하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십수 명의 아이들 중에 한 명인 내가 아니라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해 주고 보살펴 주는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녀석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내 호기로움이 어쭙잖다. 


 녀석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멘토라는 사람도 평생 자기 옆에 붙어 있을 게 아니라는 걸. 내가 무얼 해야 할지 어떤 태도로 아이를 만나야 할지는 앞으로 많은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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