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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May 06. 2023

집 그리고 집

내가 지켜야 할 네가 있는 거기. 

 내겐, '집'이라 불릴 곳이 세 군데가 있다. 부모님이 사시는-물론, 지금은 아버지 없이 엄마가 지키고 있는-인천 본가와 학교 공동체가 준비해 준 좁지만은 않은 방 한 칸 그리고 주말마다 오가는 내 공간 하나.(이러고 보니 내가 가난하다는 말은 조용히 집어넣어야 할 듯하다.) 


 이 세 공간 중 가장 불편'할' 공간은 역시 학교 숙소일 수밖에 없다. 혼자 살기 결코 작지는 않으나 살림이 더 불어나면 감당할 곳은 못 된다. 앞에는 여학생 기숙사가 옆으로는 학교에 방문하시는 부모님들을 위한 방이 바로 붙어 있어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이웃집에서 뭘 먹고 사는지 냄새를 통해 바로 알 수 있으며 내 목소리, 티비와 라디오 소리 등은 자체적으로 조절하며 방음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한다. 자동차만 보고 저 차가 누구의 차인지 전혀 모르는 나와 달리 내 차가 있는지 없는지 내 방에 불이 켜져 있는지 없는지 관심이 많은 동료 선생님들 덕분에 '여기서는 내가 죽어도 시신만큼은 금방 발견되겠구나.' 싶어 안심이 되다가도 가끔은 그 관심에 뒤통수가 따끔거리기도 하는 이곳. 조건을 따져보면 점수를 결코 후하게 줄 수 없는 방갈로 103호. 그런데 나는 이 집이 '내집'이다. 


 인천 본가는 이미 집을 너머 '어머니' 그 자체이다. 오직 나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곳으로, 내가 마흔여섯의 어른이라기보다는 그냥 '어린 자식'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장성한 어른이 어머니를 지키고 보살피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본가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엄마품' 내지는 '어머니의 슬하'인 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그리워하게 될 공간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곳이 '내집'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엄마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엄마의 삶의 원칙 속에서 조용히 머물다 나오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일게다. 

 그렇다고 해서 한 달에 두어 번 주말에 들르는 '공간'이 '내집'에 부합하는가, 생각해 보면 또 그렇지 않다. 이상하게 그 집은 오래 머무르는 것이 불안하다. 만약 집에 인격이 있다면 그 집과 나는 데면데면하게 서로를 깍듯이 대하는 사이 정도랄까. 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반드시 친해져야만 하는 사명감에 주기적으로 만나야 하는 곳이다. 



 집도 각인 효과가 있는 것인지 부모님을 떠나 처음 혼자 살게 된 곳이 여기여서 더욱 내집이라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터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점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끈끈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 이 번거롭기 그지 없는 불편함을 거리낌 없이 담담하게 사랑하고 있는지 고민하다가 하나의 결론에 닿게 되었다. 여기는 내가 지켜야 할 무언가가 존재한다. 


먹여 살려야 할 사람 보면서 참고, 또 참으면서 버텨지는 게 회사 생활이다.
결국 먹여 살려야 할 사람이 계속 먹고살게 만드는 원동력


 드라마 대행사를 보면서 저 대사가 참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를 소모해 가면서 먹여 살리고 싶은 존재가 결국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아이러니라니.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어떤 이유든 그게 단기든 장기든 '먹여 살려야 존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숙형 학교다 보니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며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끊임없이 먹이고 보살펴야 하는 녀석들이 내 곁에 있고 하루 한 번 내 사료를 기다리는 네 마리의 길고양이들이 살고 있으며 십 년째 '내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동거묘도 있었다. 



 특히, 이 녀석. 어떤 여행이든 가급적 1박2일 정말 길면 2박3일 정도. 그 이상 긴 출장은 가급적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녀석 때문이었다. 나 하나 바라보면서 십 년 이상 같이 살고 있는 이 녀석 때문에라도 학교 숙소는 숙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집은 결국 유형의 건물로만 정의 내릴 수는 없는 듯하다. 극단적으로 집이라는 공간이 없이도 '집'은 성립될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다 보니 다시 한 번 '가족'이라는 두 글자를 곱씹는다. 천 가지 감정이 들다 보니 한 마디의 말도 쉬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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