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적 소시민 May 08. 2023

내집 말고 ’우리집‘

동거묘와의 대단찮은 첫 만남, 의 시작

 바로 어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세 번째 편을 보고 레오에 대해 글을 써야 할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방갈로 103호가 ‘내집’이 아니라 ‘우리집’이 된 시작점을 나는 글로 정리해야만 한다. 그것이 부족하기 그지없는 ‘집사’로서, 함께 사는 동거인으로서의 예의이기 때문이었다. 나와 동거묘 레오의 대단치 않은 역사를 어딘가에는 기록해 두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십 년 전인 2013년 7월 13일, 혼자 살던 내집에 레오가 왔다. 동거묘 레오가 옴으로써 방갈로 103호는 내집이 아니라 ‘우리집’이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동거묘와 같이 살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내집에서 우리집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시작점은 순전히 외로움 때문이었다.

 스멀스멀 내 안에 뭔가가 꿈틀대는 걸 못 알아챈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게 외로움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김치도 혼자 담가 먹어보고 곧 있으면 고추장과 된장도 담글 수 있지 않을까 묘하게 자신만만했던 내가 무너진 날은 그리 어렵지도 않았던 ‘오이장아찌’를 무치는 날이었다. 염장이 잘 된 오이지를 꺼내 갖은양념과 함께 잘 무치고 맛을 보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식감도 좋고 참기름으로 마무리해서 그런지 고소고소함이 기분 좋게 내 코를 후벼 파던 그날. 오이장아찌무침을 반찬통에 잘 넣어두고는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 분명하게 내 마음의 정중앙을 후벼 파던 건 고소고소함을 가장한 ‘외로움’이었다. 이 맛있는 걸 나 혼자 먹어야 하는 게 서러웠던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가던 사람에게 매몰차게 차여서 그랬던 것인지 때로는 너무나 적막해서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 것 같은 착각 때문이었는지... 어쨌든 그날 난 서럽게 울며 확실하게 알았다. 나는 외롭구나.


 사람을 만나볼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때도 지금도 사람을 만나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어쨌든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반려견이었다. 그래, 충분히 사랑해 줄 존재 동시에 나를 사랑해 줄 존재를 찾자. 비록 종은 다르지만 어느 정도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하니 역시 ‘개’가 제일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바로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고 반나절만에 이건 개에게 못할 짓임을 배우게 되었다.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던 내가 과연 매일 개와 함께 산책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내집’의 구조상 분명 개가 짖어대면 양 옆집에 민폐를 끼칠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내가 개와 함께 살지 못하겠구나 싶었던 건, 내가 없는 동안 이 개가 느낄 외로움이었다. 다른 동물에 비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면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걸 보고 나 좋다고 개에게 몹쓸 짓을 할 수는 없겠다 싶었다.


 그렇게 포기하려는 찰나,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짧게 책을 보고 유튜브를 보면서 몇 가지 매력적인 요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외로움을 덜 타는 녀석,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개인주의적인 존재, 논란은 있으나 같이 살기로 했으면 집에서만 생활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주인님‘.... 물론, 지금에야 이 모든 요소들이 다 들어맞는 것도 아니고 어떤 건 사실과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반려 동물과 살아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다른 예외 규정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결심했다. 나 맘먹었어, 방금.
고양이랑 같이 살기로.


 물론, 마음먹었다고 해서 바로 고양이부터 데려올 정도로 나는 어리숙한 사람은 아니다.

 같이 살기로 했으면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거다. 내가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나랑 같이 사는 이상, 배곯지는 않게 하리라,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가서 낫게 하리라 그리고 너의 죽음은 내가 지키리라. 이 엄청난(?) 다짐을 정말 생각 없이(??) 하고 나서 바로 ‘공부’에 돌입했다.


도대체 고양이 넌 누구니? 정말 목숨이 아홉 개인 거니? 혹시 63 빌딩에서 떨어져도 안 죽을 수 있는 거니?


 당시 나이가 서른을 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름, 인텔리에 속하는 교사인 나지만, 진심으로 고양이는 왠지 모르게 높은 데서 떨어져도 절대 안 죽을 것만 같았고 진짜로 과학적으로 목숨이 아홉 개일 수 있다는 놀라운(?) 가정을 하고 있었다. 이게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사실에 나는 과거의 ‘나’가 여전히 부끄럽고 창피하다.



작가의 이전글 집 그리고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