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묘와의 대단찮은 첫만남,을 준비하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혹시 가오갤을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이 글을 볼 사람이 몇 명이나 될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영화 보시고 나서 봐주시든지 그냥 뒤로 돌아가 주셔도 좋습니다.
어제 가오갤3을 보면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이야기 줄기가 하나 있었다.
가오갤이라는 영화의 전편이 모두 ‘가족’ 내지는 ‘유사가족’이라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어서 이번 편에서 작정하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겠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의 전반부는 예상한 대로 충실하게 그 주제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조심스레 갈라져 나온 이야기 줄기가 ‘종’의 평등 내지는 동물권이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소위 ‘고등생명체‘의 구출과 함께 그 다음은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긴장하며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 눈물을 한바가지 쏟아내며 나름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나올 수 있었지만.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다른 데를 들르지 않고 곧바로 ‘우리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편안하고 안락한 곳 말고 내가 먹여 살려야 할 존재가 있는 방갈로 103호로.
나는 인천 본가에 가면 반드시 서점에 들른다. 독립서점이든 대형서점이든 책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돈이 없어 책은커녕 밥 한 끼를 먹어야 할지 고민이 되던 시절, 과제는 해야겠고 책 살 돈은 없고 도서관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고... 그럴 경우에는 서점에 가서 나는 그렇게 ‘책도둑질’을 하곤 했다. 깨끗한 손으로 책의 표지나 책장이 상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며 책을 ‘훔쳐’ 봤었다. 책을 닫아두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안심이 되는 일인지... 그 때의 버릇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서점에 가면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책 한 권을 훑어읽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그 책 한 권과 다른 책 한 권을 꼭 사들고 나오곤 했다.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데로 셌구먼. 어쨌든 고양이와 같이 살기로 결심한 순간, 거의 매주 인천 본가를 들렀다. 부모님을 뵙기 위함도 있었지만 필요한 책을 구입하기 위함이 더 컸다. 그 당시에도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으나 옷도 입어보고 사야 하듯 책도 내게 필요한 책인지 한 번 훑어보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그렇게 약 일 년을 고양이와 관련된 정보 습득용 책, 수필, 소설 등 가리지 않고 책을 읽어댔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웹서핑을 하면서 관련된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책이 고양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면 다양한 영상들은 나에게 고양이를 넘어 ‘동물’들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었다.
고양이의 경우 산책을 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반려 동물의 중성화 수술은 바람직한 것인가, 반려 동물의 교배 문제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부작용들을 우리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동물 실험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의약품 실험을 위해 동물 실험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고래를 집단 사살하는 문화는 전통으로 봐야 할 것인가, 인간의 육식을 위해 동물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도축되고 있는가, 그러면 동물들의 도축은 올바른 것인가, 동물의 생명권을 인간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인간과 동물의 종 평등은 가능한가...... 그렇게 나는, 피터싱어의 책들을 사서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내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단순히 [유별난 식습관을 지닌 독특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중에는 자신의 건강은 물론 동물들의 생명권을 지켜주기 위해 뜻을 굽히지 않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한두 달 정도 공부하면 같이 살 준비가 끝나겠지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고 영상을 보면서 고양이 한 마리와 같이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연하게도 이 시간을 거치면서 나와 함께 살 고양이가 63빌딩은커녕 인간에게 위험한 높이라면 고양이에게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과 고양이의 목숨은 결코 아홉 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신.
웃지 못할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레오와 같이 산 지 딱 하루 지났나? 퇴근하고 나서 레오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어 우아하게 크리넥스 티슈로 눈을 닦아줬는데 이게 웬일. 피눈물이 흐르는 게 아닌가.(당시 내 눈에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 ㅡㅡ;;) 부랴부랴 고양이를 안고 여기서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동물 병원으로 직행했다. 운전해서 가는 길, ‘레오의 전 집사가 아픈 걸 숨기고 나한테 보낸 거였구나,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파양을 해야 하나, 아니다, 그건 아니다. 내가 어떻게든 치료해 줄 수 있을 거다. 그래 할 수 있어!’ 오만 생각을 하면서 병원에 도착. 의사 선생님께 숨도 안 돌리고 달려가 아이가 피눈물을 흘린다고 눈물을 닦았던 휴지를 들이밀었다.
의사 선생님 왈,
“이건 정상입니다. 원래 고양이의 눈물 색깔이 그렇게 보여요. 고양이의 눈물 색깔은 철분이 함유되어 있는 포르피린(porphyrin) 성분 때문에 붉게 보인답니다. 오신 김에 조금 봤는데 다른 데 문제 없이 아주 건강합니다. 고양이 처음 기르시나 봐요. 원래 잘 모르면 그렇습니다. 껄껄껄.“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책을 읽으며 밑줄까지 쳐놓았던 게 떠올랐다. 일 년을 그렇게 책을 읽고 영상을 봤어도 현실 안에서 경함하는 문제 앞에서는 속수무책. 지금이야 웃으며 넘길 에피소드지만 피눈물(?)을 흘리는 고양이를 차에 태우고 운전하면서 가는 길에는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할 수밖에 없었던 아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