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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Jun 21. 2023

내집 말고 ‘우리집’

아픈, 동네 고양이

생명이 생명답게 살다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레오와 같이 산 지 3, 4년 정도 지난 어느 겨울이었다. 같은 동네 아이들이 멀리서부터 나를 향해 뛰어오며 외쳤다.  


 “저기 아픈 고양이가 있어요! 빨리 도와줘야 해요! 어서요!!”


 난감하다. 우리 동네에서는 내가 고양이와 살고 있는 것은 물론 모종의 이유(?)로 동네 고양이들에게 하루 한 끼를 대접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동네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제공하면서 그 어떤 스킨십도 없다. 그저 정해진 자리에 사료를 놓고 물을 떠놓을 뿐, 흔한 눈맞춤도 없는 기계적인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픈 고양이가 있으면 나나 동네에 사는 동물 애호가 외국인에게 달려간다. 동물 애호가 외국인을 찾지 못했는지 오늘은 내게 뛰어오는 중이었다. 종종걸음으로 녀석들이 발견한 고양이에게 향한다. 향하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병원비는 얼마나 들지가 스친다. 병원비가 많이 나오면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다양한 고민들을 안고 그 아픈 고양이 곁으로 갔다.


 새끼 고양이였다. 이미 사람 손을 탄 탓인지 어미 고양이는 보이지도 않았고 잔뜩 눈곱이 낀 녀석은 콧물을 그렇게 흘리고 있었다. 딱 봐도, 아픈 고양이 그 자체였다. 미리 준비해 둔 수건으로 그 녀석을 감싼 뒤 곧바로 차를 타고 레오를 봐주시는 동물 병원으로 달렸다.


 녀석을 감싼 수건이 묵직하고 뜨끈했다. 




 “아이쿠, 이 녀석 감기가 심하게 들었네요.”

 “혹시 심한 건 아닌가요?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까요? “

 새끼 고양이를 길게 진찰하시고는,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일단 약 지어드릴 테니 가서 먹여주세요. 그리고 혹시 레오랑 같이 있지는 않게 해 주세요. 혹시 옮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선생님은 뭔가 더 할 말이 있으신 듯 말을 뒤로 주욱 빼셨지만 이내 접어 넣으셨다.

 “아니에요. 레오 보호자분. 이 녀석이 어리긴 하지만 약만 잘 먹으면 금방 나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일단 낫고 나면... 레오 동생 삼아볼까, 생각해 보려구요." 


 허튼 말이 아니었다. 녀석을 수건에 감싸올린 후, 수건을 통해 전해오는 묵직한 뜨끈함이 내 손바닥에 전해지면서 내 마음은 이미, 내 식구였다. 


 '워낙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레오지만 분명 이 꼬맹이와는 친해질 수 있을 거야. 이 뜨끈한 온기를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겠어. 해보는 거야. 레오도.. 좋아할 거야.' 


 레오와 접촉할 수 없으니 결국은 베란다 말고는 답이 없다. 그래도 꽉 막힌 베란다니 그리 춥지 않을 것이다. 스티로폼 상자에 수건을 잔뜩 깔아놓는다. 그 위에 핫팩을 골고루 깔아놓고 마지막 전기 히터까지 켜놓았다. 레오가 좋아하는 캔 간식과 사료, 물을 준비하고 마침내 이 녀석을 조용히 풀어놓는다. 약 기운이 벌써 도는 건지 그 작은 녀석이 낯선 이 공간을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내가 무섭기도 할 거고 처음 경험하는 이 공간이 녀석에게는 꽤 충격이겠지. 그래도 공간을 뛰어다니는 꼬맹이 녀석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놓였다. 금세 지쳤는지 숨이 거칠다. 따스하게 집에 녀석을 들여보내고 나니 어느새 밤. 




 사람의 감이란 게 참 무섭다. 

 새벽녘에 갑자기 눈이 떠진다. 뜬금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가득 고인다. 천천히 일어나 불을 켜고 조용히 베란다로 향한다. 꼬맹이의 집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꼬맹아, 하고 부르며 녀석을 만졌는데, 이미 녀석은 나무토막처럼 딱딱했다. 생명이 끝난 존재가 이렇게 딱딱하고 차가울 수 있는 것임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생명이 떠난 육신이 이렇게 소름 끼치게 식어갈 수 있다는 게 서럽고 무섭고 슬펐다. 

 꼬맹이의 몸은 꽁꽁 굳어 있었고 채 눈도 감지 못한 채였다. 서럽게 울며, 수건으로 꼬맹이를 감쌌다. 장갑과 모종삽을 챙겨 들고 동네 뒷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을 곳, 그러나 그늘지지 않은 곳을 찾아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잔뜩 언 땅을 파는데 녹록지 않다. 땅을 거의 다 파 갈 무렵 모종삽은 부러지고 말았다. 그게 그리 서러웠는지 꺼이꺼이 울었다. 모종삽이 아까워 운 것인지, 만 하루, 내 식구였던 녀석의 죽음이 슬퍼서였는지 아니면 길에서 살아야 하는 작은 생명들의 처지가 가여워서였는지 그도 아니면 그저 생명이 떠나간 존재의 허무함 때문이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울면서 녀석을 땅에 묻었다. 


 그렇게 녀석을 땅에 묻고 돌아왔다. 이른 아침, 여섯 시가 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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