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종, 다른 삶
얼마 전 sns를 보면서 충격을 받은 사진이 한 장 있었다.
동일한 생명이지만 그 생명이 사는 방식은 꽤나 다르다.
제목이 금밥그릇, 흙밥그릇이었는데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는 개들이 운전자석에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보던 반려견과 눈이 마주친 사진이었다. 이걸 보고 이마가 아득해진다. 하긴, 인간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아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빈부 격차가 날로 심해지는 판인데 동물들의 세계는 말해 무얼 할까. 사실 처음부터 이런 세계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무관심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레어와 같이 살 준비를 하면서 내가 무관심했던 세상을 제대로 대면하게 되었고 그 과정은 꽤나 아프고 힘들었다.
그러다가 동네에서 만났던 개 한 마리가 생각났다.
레오와 함께 산 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내가 사는 동네에 병든 개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사람과 함께 살았던 녀석인지 마을 사람들 뒤를 그렇게 졸졸 따라다녔다고 한다. 비극은, 모든 사람들이 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고 더 비극은, 이 녀석의 피부병이 꽤 심했다는 거였다. 혹시나 싶어 우리 레오 먹이려고 산 간식과 사료를 비닐봉투에 담아 그 녀석을 찾아다녔다. 사람이 참 이기적인 게 막상 그 개를 만나고 보니 정말 피부병이 심해 보였고 단번에 든 생각은 '혹시라도 이 피부병이 우리 레오한테 옮으면 어쩌지.'였다. 처음 보는 나를 향해 반갑게 달겨드는 녀석을 온 몸으로 껴안아주기에는 내 마음은 좁디좁았다.
준비해온 그릇에 건식 사료와 캔 사료를 부어놓으니 허겁지겁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혹시나 해서 있는 사료와 캔 사료를 한 번 더 그릇 가득 채운다. 오래 굶었던 탓인지 녀석은 두 번째 그릇 또한 순식간에 깨끗하게 비워놓았다. 부랴부랴 세 번째 그릇을 채우고는 레오가 다니는 동물 병원에 연락을 드렸다. 일반 동물병원이면서 동시에 유기동물센터도 함께하는 곳이어서 곧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갈 수 있었다.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케이지의 문을 열자 그 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케이지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 때의 감정은 뭐라고 해야 할까, 슬픔과 애잔함 그 어딘가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평온히 잠든 녀석과 함께 병원에 들렀고 나는 병원에서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다.
정해진 기한이 지나면 이 녀석은 안락사를 시키게 됩니다.
"혹시 나을 수는 있는 건가요? 그리고 치료비는 많이 들까요?"
"일단 시간이 오래 걸릴 거에요. 무엇보다 이 개는 유기된 것 같아요. 이 녀석을 키우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고 일단 유기동물로 등록하고 주인이든 혹 입양자든 나타나는 걸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혹시 레오 집사님이 이 개도 입양하실 건가요?"
그 말까지 듣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쉽사리 그러겠다고도 못했으나 또 반대로 아니라고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유기동물로 등록을 하고 난 후 일정 시간이 지날 때까지 주인이나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동물은 안락사를 시키기 때문에 머뭇거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의중을 이미 알고 계셨는지,
"일단 이 녀석은 제게 맡기고 레오에게 집중하세요. 제가 기본적인 처치도 하고 상황을 지켜볼게요."
그 말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리고 반가워하는 나를 보며 또 얼마나 수치스럽던지. 이후 이 때를 생각하면 내 근천스러움과 속물근성에 나 혼자 얼굴이 빨개지곤 할 정도였다. 잠에서 깬 그 개는, 아까와는 달리 너무나 순하게 우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반가운 기색도 그렇다고 피곤한 기색도 없이 그냥 조용히 나와 의사 선생님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 눈을 차마 계속 볼 수 없어 도망치듯 나는, 병원을 나오고 말았다.
다음 날, 인터넷을 통해, 내가 만났던 그 녀석이 유기동물로 등록된 것을 확인했다. 그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에도 그 녀석에게는 반려자도 입양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열흘이 되던 날, 녀석이 안락사되었음이 떴다.
나는 그렇게 한 녀석의 생을 외면하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내가 사는 동네에 누군가는 개를 버렸고 한 녀석은 다른 사람을 통해 보호소로 가서 생을 마감했으며 또 한 녀석은 어떻게든 마을에서 키워보려고 애썼으나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는 책임은 결국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이 되기에 몇 년을 함께 살다가 결국 다른 분에게 갔다.
나는 '우리'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우리집, 우리 엄마, 우리 가족, 우리 강아지, 우리집... '우리'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든든한지, 나는 이왕이면 '우리'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동네의 울타리는 어디까지일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이 동네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들, 백로 몇 마리, 두꺼비와 꽃뱀 몇 마리들도 '우리 동네'의 식구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존재들은 우리 사람들을 '우리 동네 식구'로 인식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