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을 자유 (1)
"저기 산동물들이 닭을 그렇게 잡아먹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빨리 개 한 마리 키우라고 했잖아요. 고 녀석을 닭장 앞에 '키우니까' 확실히 다른 동물들이 닭장에 오질 않아요."
소소하게 닭을 키우면서 그 닭들이 낳은 알들을 이웃들과 나누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분들이셨다. 그렇게 이상할 것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다른 이웃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들이셨고 또 정말 법 없이도 사실 만한 분들이셨다.
요즘은 동네를 걷지 '못'한다.
큰 도로에서 걸어서는 한 시간, 차로는 약 10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에서 약 십 년을 살던 어느 겨울, 생각해 보니 나는 내가 사는 이 동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운동도 할 겸, 동네 한 바퀴를 걸어보자! 마음을 먹고 그날부터 매일 동네 한 바퀴를 걷기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왠지 처연한 논밭을 보며 걷기도 하고, 연둣빛 새잎이 나는 나무 아래를 걷다가 어느새 녹음이 짙어져 매미 소리와 함께 걸었다. 벼가 무르익오 파아란 하늘과 함께 누우런 황금물결을 이루는 논두렁 옆을 걷다가 다시 겨울, 눈과 함께 걷기도 했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사계절을 나는 십 년 만에 제대로 느끼기 시작했었다.
동네 한 바퀴의 범위를 점차 넓혀가던 어느 날이었다. 일 년 남짓 계속 봐왔던 어떤 풍경들 중 어떤 것들이 뭔가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골집 골목을 걸으면 으레 들리는 개 짖는 소리가 마당이 아니라 그 집의 창고에서 들렸다. 사면의 벽 위에 지붕 하나만 올린 폐가에 가까운 그 창고에서 일 년 내내, 개가 짖고 있다는 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일 년이 지나서 알았다. 어떤 집은 일 년 내내 문 밖에서 1미터도 안 되는 목줄을 묶어 키우기도 했다. 그 녀석은 나를 보면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캉캉거리며 짖었다. 내가 지나가야 비로소 대문 옆에 있는 작은 개집으로 들어갔다. 이방인을 싫어해서 나를 보면 짖나 보다 싶었는데 일 년 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그 자리에 사는 작은 개가 이상하다는 것도 일 년이 지나 알았다.
한 녀석도 내가 지나가면 위협적으로 짖었다. 처음에는 어디서 짖는지 몰랐는데 크지 않은 밭뙈기 저쪽으로, 개집 하나와 반 평 정도 될까 싶은 작은 공간 주변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거기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 철조망 속에서 녀석은 으레 그러하듯 목줄을 하고 있었고 그 목줄은 개집 옆으로 이어져 있었다. 기껏 걸어야 다섯 발자국이나 될까 싶은 공간, 거기에서 짖고 있었다. 다 찌그러진 밥그릇 주변에 밥풀이 몇 개 붙어 있었다. 작은 밭뙈기를 지나 차 두 대 정도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길 건너에 시골집이 하나 있었다. 아마 그곳에 이 녀석의 주인이 살고 있으리라. 아마도 하루 두어 번 밥을 줄 때만 보러 가겠지, 싶었다. 많으면 하루 세 번 인간이 먹는 밥을 먹고 목줄에 매여 저 밭뙈기를 지키는 개의 삶이 정상적인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동네 한 바퀴를 시작한 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갔을 무렵에서야 나는 그게 뭔가 어색한 일이고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이사야 61:1
동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나라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날 저녁 펴든 성경책에서 신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곧, 가난한 사람들이 좋아할 기쁜 소식이 갈 거란다. 상한 마음을 싸매어줄 거란다. 포로들에게는 자유가 임할 것이고 갇힌 사람들은 해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널리 알려주려무나.‘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 말씀이 사람과 함께 피조 세계에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해방과 자유를 경험한 인간이 있다면 혹은 상한 마음을 싸매주시는 신의 손길을 경험한 인간이 있다면 그 인간 역시도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묶임을 풀어주고 갇힌 존재들에게 자유를 줘야 하는 도의적인 책임이 생긴다. 그리고 고 존재들은 인간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주 작게는 광에 갇혀 살거나 대문 앞으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혹은, 밭뙈기를 지키기 위해 반 평 남짓한 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개들의 묶임을 풀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나는, 비겁하게도, 그날 이후, 동네 한 바퀴를 돌지 못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행동할 용기 없는 나는, 그저 보지 않는 것으로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던 한 녀석이 있었다. 동네에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짜 그 자체였던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