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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소시민 Aug 27. 2023

내집 말고 ‘우리집’

길을 걸을 자유 (2)

 "저기 산동물들이 닭을 그렇게 잡아먹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빨리 개 한 마리 키우라고 했잖아요. 고 녀석을 닭장 앞에 '키우니까' 확실히 다른 동물들이 닭장에 오질 않아요. 새끼 때 데리고 와서 닭장 근처에 목줄 해서 키우고 있는데 밥만 잘 주면 그 녀석이 말을 그렇게 잘 들어요. 알아서 잘 지키더라구요.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요. 나중에 어디서 새끼 개 생겼다는 소식 들리면 한 마리 줄 테니까 닭장 근처에 묶어두고 키워요.“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작게 닭장을 하시는 동네 형님에게 온 전화였다. 형님, 어쩐 일이세요!


 “일단 너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혹시 ㅁㅁ이랑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러지? 그 녀석 관련된 일인데 너한테 하소연도 할 겸해서 전화했다. 사람들 안 다니는 작은 공터에 내가 닭 몇 마리 키우잖냐. 그리고 닭들 지키라고 개 한 마리도 키우구. 그 ㅁㅁ이 그 녀석이 우리 개랑 놀아줘도 되냐고 해서 그러라고 하기는 했는데 어저께였나, 자정 넘어서 닭들 잘 있나 싶어 나가 봤더니 우리집 개는 없어지고 저기 멀리서 ㅁㅁ이 녀석이 우리집 개랑 놀면서 걸어오는 거야. 깜짝 놀래서 여기서 뭐 하느냐고 물었는데 도통 답을 안 해. 그래서 일단 개는 다시 데려다 놓고 녀석은 집에 바래다줬지. 물어봐도 답을 안 하고 그 녀석 엄마랑도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통 말을 안 해서 말이다. 혹시 니가 한 번 가서 물어봐 주면 안 되겠냐? 그래도 너랑은 이야기를 쫌 하는 것 같아서.“


 동네에서는 이미 괴짜라고 소문이 자자한 녀석이었다. 어느 날은 집에 있는 책상과 의지를 가지고 나와서 들 한복판에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소리 내서 읽기도 하는 꽤나 독특한 녀석이었다. 일단은 한 번 만나보겠다고 하고 ㅁㅁ이 그 녀석을 찾아다녔다. 녀석이 잘 돌아다니는 언덕에 갔더니 역시나, 그 녀석이 거기에 있었다.


 “ㅁㅁ아! 거기서 뭐 하냐!”

 “저요? 저 그냥 자연 속을 거닐며 산책하고 있어요. 오늘 바람이 정말 좋지 않나요? 정말 싱그러워요.”

 “너 혹시 나랑 차 한 잔 안 할래?”

 “좋죠. 함께 차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거 정말 좋아요!”


 근처 작은 커피숍에 들어가 앉아 근황을 묻다가 이내 직접 물어보았다. 그 밤 갑자기 왜 닭장 지키는 개와 같이 있었는지. 녀석은 대수롭지 않게 순순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유랄 게 있나요. 그냥 풀어주고 싶었어요. 학교에 가서 정해진 수업 시간에 앉아있는 게 전 그렇게 힘들어요.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은 장소에서 하고 싶은 내 방식대로 하고 싶은데 학교에선 그렇게 하면 혼나요. 세 달 전인가, 닭장에 갔더니 저 강아지가 묶여 있는 거예요. 줄이 길게 묶여 있다고 해도 결국은 돌아다닐 수 있는 데가 반경 1미터가 안 돼요. 그 와중에 제가 왔다고 오르락내리락 저를 반겨주는데... 그게 너무 슬펐어요. 수업 시간에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는 제가 어떨 땐 되게 불쌍했는데 이 강아지를 보면서는 나는 하나도 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 강아지는 3개월 동안 다른 델 가본 적이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주는 사료에 좋다고 충성을 다하고, 가끔씩 놀러 오는 사람들 보면 놀아달라고 막 안기는데... 그걸 보고 있으니까 답답해서 미치겠는 거예요.”


 녀석은 조용히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눈물이 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얼굴 언저리가 어둡다. 그 그림자가 눈물보다 더 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괴짜 녀석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말을 이었다.


 “제가 또 이상한 짓을 한 건가요? 그때는 정말 잠이 안 왔어요. 그 한밤 중에 그 개가 자기 무섭다고 부르는 것 같았거든요. 낮에는 사람들도 오가고 닭장 아저씨도 닭이며 개한테 사료도 줄 겸 오시잖아요? 그런데 밤에는 정말 한 사람도 안 가잖아요. 그래서 다 자겠다 싶은 시간에 몰래 나간 거죠. 개를 훔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녜요. 그냥 놀아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거기 말고 다른 데도 구경시켜주고 싶었어요. 그 순하디 순한 개가 평생 죽을 때까지 거기서만 있어야 하는 거 너무 비극적이지 않나요? 쌤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고맙다.”


 녀석은 예상치 못한 답을 들은 듯, 놀랐다.


 “고마워. 이 말 뒤로 나나 닭장 아저씨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긴 한데, 그 말들보다 가장 먼저,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니가 한 행동에 대해 나, 너한테 정말 고마워. 진짜.“


 이 말 뒤로 뜸을 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들이 걱정했는지를, 그리고 왜 너와 동일한 생각을 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꽤 길게 이야기했었다. 물론, 녀석에게 내가 해준 말들은 이해는 가지만 용납은 안 되는 말들이었으리라. 그럼에도 네, 네, 알겠습니다, 추임새를 넣으며 들어주었다.


 “내 말 잘 들어줘서 고마워. 백 프로 다 이해가지 않아도 기꺼이 들어줘서 고맙고, 그렇다고 해줘서 고맙다.”

 “쌤도 제 행동이 틀렸다고만 하지 않으셨잖아요. 고맙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또 알았더라도 용기가 없어 도망치는 나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묶인 개의 목줄을 풀어 ‘마땅한 자유’를 선물해 주려고 했던 녀석이 더 나은 ‘인간’이었다. 내가 했어야 하는 것들을 녀석이 대신해준 것만 같아서 나는 녀석에게 ‘부끄러운 고마움’을 표현해야만 했었다. 물론, 녀석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하지는 못했다.




 녀석이 우리 동네를 떠난 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떠나기 전까지는 닭장을 지키는 강아지와 산책도 하면서 놀아주는 걸 몇 번이나 보았다. 녀석이 떠난 후, 그 개는 여전히 닭장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으며 충성스럽게 닭장을 지키고 있다. 가끔씩 거기를 지나면서 그 개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를 보고 짖지 않는 그 개의 검은 눈동자 속에 왠지 모를 그리움이 느껴진다. 닭장 근처에 묶여 있는 목줄에 눈이 간다. 조용히 그 줄을 풀어 내 손에 가져온다.


 아주 짧은 자유가 될 거야. 니가 더 힘들지도 몰라.
그래도, 잠시만이라도 우리 걷자. 니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나도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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