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적 소시민 Jul 22. 2023

교토에서 저녁을

쇼세이엔의 연못에서 끌어안음을 배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있는 물의 표면은
무척이나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느즈막히 일어나 비 오는 아침을 맞이한다. 호텔 라운지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지켜봤다.


 ‘시원하게 쏟아지는구나.’


 교토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저녁이면 한국 땅을 밟고 있을 오늘이다. 일찌감치 싸놓은 캐리어는 호텔의 배려로 오후에 찾기로 했다. 그리고 거닐기 시작한 곳은 교토역에서 가까운 정원 쇼세이엔. 원래는 근처 카페에 들어가 앉아 공책을 펴놓거나 아이패드를 꺼내놓고 내 감정을 다시 한번 정리할 계획이었다. 내면을 헤집고 다니는 ‘미움’을 붙들어 앉히고 원인과 해결방안을 탐색해 볼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교토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원이 하나 있다는 말에 냉큼 계획을 바꾼 것이다. 아직은 이 미움을 해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나 보다. 막상 나가려고 하니 하늘도 내 여정을 원하는지 비가 그쳤다. 습한 공기를 잔뜩 머금었으나 그렇다고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음이 번잡해서 그러는지 교토역을 통과해서 지나갔으면 빨랐을 것을 크게 한 번 돌아 걷다 보니 생각했던 시간보다 꽤 걸려서 도착했다.



 500엔을 내고 정원의 시작을 알리는 문을 통과해서 들어갔다. 바로 어제 은각사를 보고 와서 그런지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는 평범함에 실망스러웠다. 아까 내린 비에 신발에는 진흙이 묻기 시작했고 공기는 눅눅하고 더웠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연못이 나왔다. 연못은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끌어와 온몸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연못에 비친 세상도 아름다웠지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있는 물의 표면이 나에게는 더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하늘이 흐리면 흐린 대로, 나뭇가지가 부러졌으면 부러진 대로 연못의 표면은 가감 없이 세상을 담아내고 있다. 연못이 끌어안은 세상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보고 있었다. 거기에도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있었다. 간혹 물속 물고기가 뻐끔 주둥이를 내놓을 때도 있었고 소금쟁이가 돌아다니며 파문을 만들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 수면을 흐트러 놓을 때도 있었다. 그 다양한 변화들이 재미있었다. 물고기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고 나서, 소금쟁이가 지나가고 난 후, 바람이 다른 곳을 떠나버리면 연못은 다시 차분하고 고요하게 세상을 비춘다. 그럴 때를 제외하고 연못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걸 지켜보고 있자니 강하게 내 주장을 하고 내 감정을 쏟아부으려고 애쓰는 ‘나’를 만난다. 내 마음은 파문이 끊이질 않는 연못의 표면과 같다. 아무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고 내 감정만 알아달라고 보채느라 외부 세상을 비추지 못한다. 그걸 한 번 더 알아채고 나니 괜히 더 심술이 난다. 명경지수를 보며 배우지만 그 배움을 곧바로 삶에 연결하지 못한다. 그게 됐으면 나는 이미 날개 달고 하늘나라로 갔겠지.


 연못은 그만 보고 정원의 뜰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소박한 길 위로 단아하게 연꽃이 피었다. 그 사이 벌들이 붕붕, 날갯짓이 바쁘다. 그 뒤로 단아하고 정갈하게 집들이 앉아있는데 그 앉음새가 참 곱다. 처음에 들었던 실망감은 점차 사라지고 만족스러움이 단전에서부터 차오른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며 교토역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골목길은 일본과 다르게 이동과 소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일본과 다르게 우리는 돈만 있다면 자동차를 살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골목에 차를 세워두는 게 당연한 일상이다. 이런 일상에 살다 보니 골목길 운전 하나는 끝내주게 배울 수 있다는 게 또 하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물론, 그러다 보니 늘 주차대란이 끊이질 않는다는 게 단점이면 단점이다. 그러나 이걸 또 반대로 생각하면 자동차를 통해 이동하고자 하는 내 자유를 인정해 주고 있다는 증거기도 하다. 가끔 내 주변 사람들이 일본의 골목을 예찬하다 보니 그 방법 중 하나로 우리나라 골목의 복잡함과 무질서함을 이유로 까내리곤 하는데 거기에 백 프로 동의를 보내지는 않는다. 일본의 정갈하고 깨끗한 골목을 원한다면 다양한 행정 절차를 통해 자동차를 구입하기 힘들게 만들면 될 테니까 말이다. 자동차 없는 골목을 볼 수 없는 대신 우리는 이동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는 걸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골목 문화가 일본보다 못하다고만 치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렇다고 일본의 골목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본의 골목은 뚜벅이들에게 엄청난 배려이다. 편안하게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이점뿐만 아니라 동네를 엄청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자동적으로 얻게 되는 셈이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일본의 골목이 특별히 더 깨끗한 건 이런 이유가 아주 조금은 작용해서가 아닐까. 어쨌든 일본의 골목은 여행자들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걸으면서 일본 특유의 문화를 맛볼 수 있고 그 골목 골목을 걸어 다니면서 꽤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가끔 얻어걸리는 선물 같은 장소들이 나오기도 한다.

 

걷다 보면 얻어걸리는 선물이 하나씩 있는 법.

 쇼세이엔을 나와 교토역을 향해 걷고 있는데 상당히 웅장한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뭘까, 싶은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도착해 보니 상당히 웅장한 절이 하나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무.료.관.람. 아무래도 쇼세이엔의 관람료 안에 히가시혼간지의 관람료도 포함이 되어 있었나 보다. ^^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더니 기분이 좋다. 찾아보니 히가시혼간지라는 절로 교토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정문, 거대한 야미다도와 고에이도가 눈에 확 들어온다. 교토에 이런 절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뿐더러 서쪽에는 역사적으로 더 유서가 싶은 니시혼간지도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천천히 절 안을 둘러보고 절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신도들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밧줄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 밧줄로 절을 건축하는 목재들을 날랐다고 하니 대단한 정성이 아닐 수 없다. 법당 내부에도 실내장식이 꽤나 화려하고 줄지어 매달린 등이 인상적이었다.

 



 짐을 찾기 위해 호텔로 갔다.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인사를 하고 꼭 다시 오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교토역에서 간사이 공항으로 이동한 후 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오후 여섯 시 삼십 분. 비행기는 천천히 이륙했고 두 시간 후 한국 땅에 도착했다. 담백하고 오래 씹어야 단맛이 흐르는 밥을 닮은 일상의 공간에 도착했다. 인천은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교토에서 저녁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