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어루만지는 문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쇳물 쓰지 마라.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내 나이 서른셋이던 2010년 가을 즈음이었나. 서산과 가까운 당진 철강업체에서 일을 하던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고가 있었다. 나보다 어렸을 청년의 죽음이 너무 황망해서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었다. 기사가 나온 다음 날이었나, 기사 밑에 애도의 글을 올리려고 갔다가 베스트 댓글을 봤는데 그 댓글이 바로 저 시 ‘그 쇳물 쓰지 마라’였다. 댓글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 후 이 댓글시가 기사로 나면서 실제로 청년의 동상을 만들어 세우자는 모금 운동도 벌어졌다. 비록 세상을 떠난 청년의 동상은 세워지진 않았으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詩碑’가 하나씩 세워졌으니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어느 겨울 나는 또 한 편의 댓글시를 만나게 되었다.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 작가가 지병과 굶주림으로 요절했다는 기사였다. 예술가는 원래가 가난한 법이라지만 밥이 없이 남는 밥과 김치를 달라는 쪽지를 붙여놓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에 울화통이 터졌다. 뭐라도 써야겠다 싶어 들어간 댓글창 맨 위에 댓글시가 달려 있었다. 그 시를 읽고 또 멍하니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 난다.
봄이었나. 90대 할머니가 자신에게 키스를 해주지 않는다며 총기를 난사한 해외 기사를 읽고 ‘노망 난 할머니가 미쳤구나. 곱게 늙을 것이지 이 무슨 추태인가.’ 속으로 그렇게 욕을 했었다. 그리고 보게 된 댓글창에는 또 댓글시가 하나 달려 있었다.
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
새벽 뜬 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관절염이 아니라
어쩌면,
미처 늙지 못한 마음이리라‘
짧은 시 한 편이 내 뒤통수를 후려친 듯, 얼얼했다. 눈알이 빠져나올만치.
그때부터였다. 다음 포털사이트 기사를 뒤지기 시작하며 이 댓글시를 찾기 시작한 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에 댓글시가 달렸다고 알려주곤 했었다.
고등학교 때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배울 때였다. 우리 국어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소설 한 편이 무수히 많은 대학생들을 노동 운동으로 이끌었습니다. 야학으로 가서 어린 동생들을 가르쳤고 공장으로 들어가 이것은 잘못된 처사라는 것으로 알려주었습니다. 문학은 힘이 셉니다. 그래서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하는 겁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문학도 힘을 보태며 함께해 왔고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난쏘공이 나에게는 어렵기도 하고 또 우울하기도 했던 터라 선생님께 배운 내용은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문학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 펜이 칼보다 강할 수 있다는 그 가르침만큼은 여전히 잊히질 않는다.
아이들과 해보고 싶다!
아이들과 국어 시간에 ‘신문 읽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걸 문학적으로도 끌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을 읽고 요약한 후 자기 생각을 덧붙이는 형식의 신문 읽기를 일주일에 한 번씩하고 있었는데 이걸 시 수업과 결합해 보기로 했다. 시를 감상하면서 시에 대한 이론적인 수업도 얼추 끝이 난 상황이었다. 수업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동기부여. 아이들에게 내가 모아두었던 기사와 댓글 시를 소개했다. 어리디어린 중1 녀석들이라고 생각해 중간중간 ‘댓글 시‘에 대해 천천히 설명을 곁들이기도 했었는데 마음은 통한다고 아이들은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마음 깊숙한 데를 건드리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늘 우리의 신문 읽기는 조금 다르게 진행해 볼게요. 이번 주 모아둔 신문을 다시 찬찬히 읽어봅시다. 내 시선을 끄는 기사를 찾아주세요. 그 기사를 오려서 따로 준비한 종이에 붙여주세요. 그다음은 알고 있죠? 기사 내용을 짧게 요약하고 정리해서 옆에 적어주세요. 그리고 그 시를 보고 느낀 점을 ‘시’로 한 번 적어봅시다.“
“선생님 친구랑 기사가 겹쳐요!”
“괜찮아요. ^^ 같은 기사를 해도 괜찮습니다!”
“선생님, 요약 못하겠어요.”
“선생님과 육하원칙 배웠던 거 기억하나요? 그 원칙에 따라 정리해 보면 조금 더 쉬울 거예요. 억지로 다 채우지 않아도 되니까 시도해 봅시다. 그다음에 한 번 더 저를 불러주세요. 제가 한 번 봐드릴게요.”
“선생님! 시는 어떻게 적어요? 시어를 반복해야 하나요? “
“글쎄요. 일단 천천히 그 기사를 읽으면서 기사의 주인공이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상상해 볼까요? 그 마음을 편안하게 적어봅시다. 꼭 운율이 느껴지지 않아도 됩니다. 자기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써보면 좋겠어요. 괜찮다면 우리가 배웠던 직유법과 은유법, 의인법 등을 활용해 보면 좋겠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선생님! 이번 시간에 다 해야 하나요?”
“아뇨,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대신 다음 주까지 해올 수 있을까요?”
“선생님 저 벌써 다했어요!“
“와! 멋지다. 다 되었으면 선생님에게 보여줄 수 있겠어요? 아차! 여러부운~! 여러분들이 정리해 준 이 종이들은 교실과 복도에 모두 붙여놓을 거예요. 혹시 이게 불편한 사람이 있을까요? 다음 수업 때는 여러분들이 만들어준 이 기사와 시를 가지고 작업을 하나 더 해볼 거거든요? 허락해 줄 수 있겠어요?”
“네에--”
“고마워요. 아차! 다 된 이 작품을 어디에 붙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시간이 더 있으니 이런 식으로 한 번 더 작업을 해볼까요?”
수업 시간을 2타임 연강으로 만들어 놓기를 잘했다 싶었다. 다 되었다고 손 든 녀석들의 작품을 보며 소심하게 조언을 하기도 하고 한껏 칭찬을 해주기도 한다. 아, 이 수업, 부산스럽고 시끌시끌하다. 그렇지만 난 수업의 왁자지껄함을 사랑한다. 이렇게 댓글 시를 다 쓰고 나면 한 녀석 한 녀석 돌아가면서 어떤 기사를 골랐는지, 왜 그 기사를 골랐는지를 나누도록 한다. 그리고 자신이 쓴 시를 낭송하고 그 시를 쓰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진중해도 장난스러워도 괜찮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만큼 했다면 그걸 존중해 주기로 마음먹는다. ^^
여기까지 끝이 나면 아이들 대부분이 댓글 시를 교실과 복도에 모두 붙여 놓는다. 다음 시간에는 이 시들을 통해 ’한 번 더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