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인 사람 혹은 문학적 인간이란.
“... 이제 그대가 쓴 시를 우리들에게 들려줄래요?”
“...나의 하늘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아직은 얼굴이 또렷이 기억나, 당신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면서도 앞으로는 당신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를 더 그립게만 만듭니다.....“
순간 정적이 흐른다. 조용한 흐느낌이 흘러나온다. 이 녀석이, 울고 있었다. 친구들의 시가 낭송될 때마다 눈시울을 닦아내던 녀석이었다. “아버지 가르침 대로 살고 있어요”… 하늘나라에 꼭 전하고싶어[그립습니다]“ 이 기사를 읽고 썼노라고 꽤 담담하게 이야기하길래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 녀석이 끄윽, 끄윽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모두들 숨죽이며 녀석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린다. 울음이 잦아들고 무엇이 그렇게 마음을 건드렸는지 물어보았다.
“그냥 친구들이 고른 기사 하나하나가 마음을 건드렸어요. 그 기사를 보고 친구들이 쓴 시를 듣는데 그 시 하나하나가 그냥 다 내 마음을 건드렸던 거 같아요. 제가 고른 기사도 그렇구요.“
국어 수업을 왜 하는 걸까. 많은 답들이 있지만 결국,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과정이 아닐까. 단 한 번 얼굴 마주한 적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울어주며 너의 일이 내 일이 되고 마침내 우리의 일이 되는 여정. 국어 시험 100점도 좋겠지만 나는 누군가의 슬픔에 기꺼이 울어주고, 누군가의 기쁨에 기꺼이 기뻐해줄 수 있으면 그 녀석이 ‘국어’를 참 잘한다고 감히 말한다.
아이들의 시가 완성되면 아이들에게 허락을 받고 모든 작품들을 교실 벽과 복도 그리고 창문에 붙여놓는다. 이왕이면, 아이들이 친히 점지한 곳에 붙여놓는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참 세상이 좋아졌다. 종이 신문 대신 웹페이지에서 뉴스를 볼 수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게다가 수업 과제도 온라인으로 가능한 시대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건 예전과 달리 뉴스 페이지 밑에 댓글을 다는 기능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쓴 시를 직접 댓글로 달게 했었는데 요즘은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우리끼리라도 친구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댓글을 달아보자. 이왕이면 온라인 말고 직접 말이다.
같은 반 아이들의 시뿐만 아니라 다른 반 녀석들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다. 침묵하며 친구들의 시와 만난다. 그리고 시와의 만남, 세상과의 만남 이후 느낀 점을 포스트잇에 써서 붙인다. 수업이 진행 중인 다른 교실에 폐가 되어서는 안 되기도 하지만 이 시간은 가급적이면 최소한의 소통만 가능하게 한다. 정말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친구와의 대화는 최소화하고 혹 할 이야기는 소곤소곤보다 더 작게. ^^ 맨 처음에는 중1 녀석들과 했던 수업이지만 요즘은 고등학생들과 하게 되어 그런지 아이들은 침묵 속에서 작품과 대면하여 만난다. 나 역시 시를 통해 아이들이 바라본 사회를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포스트잇이 떨어질 것 같으면 투명 테이프로 떨어지지 않게 고정하며 다닌다. 가끔은 정치색이 다른 녀석들이 댓글을 통해 우아하게 싸우기도 하는데 그걸 지켜보는 게 여간 재밌는 게 아니다.
참 좋은 수업이다.
아이들의 열어둔 마음으로 들어갈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참, 좋다.
모든 반, 모든 녀석들의 시가 교실과 복도에 전시되었다.
사석에서는 형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이 녀석들의 학년장 선생님. 늘 자신은 차가운 남자라며 나한테는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며 놀려대던 이 형님은 유독, 올해 이 녀석들을 사랑하셨다. 이 녀석들과 헤어져야 할 시기가 다가오자 교무실 안에서 원미연의 ‘이별 여행’을 불러재꼈던 이 형님은 시간이 날 때마다 복도에 붙어있는 아이들의 시와 그 시에 붙어있던 댓글들을 하나하나 다 읽어나가셨다. 한 작품, 한 작품을 감상하면서 ‘이야, 이 녀석이 많이 컸네. 와... 시 정말 잘 썼다.’를 연발하셨드랬다. 그때마다 나에게 ‘참 좋은 수업’이라며 나는 몰랐던 아이들의 마음을 만나서 기뻤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좋.은.수.업. 교사에게 이 말만큼 완벽하고 충분한 칭찬은 없으리라.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
2학기 기말고사 준비로 한창이었던 어느 날. 한 녀석이 나에게 물었다.
“이럴 때 이런 질문해서 죄송한데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시란 무엇인가요?”
“뭐가 죄송해요. ^^ 좋은 질문인데요.”
그 녀석과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나눴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를 보여주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는 시가 무엇인지 이야기도 나누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렇게 녀석과의 대화를 마치고 또 한 녀석이 나에게 물었다. 적당하게 어른스럽고 또 어른스러운 척도 하는 내가 참 아끼는 녀석이었다.
“선생님, 예전에 말씀하셨던 문학적 인간,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문학적 인간에 대한 정의가 있으신 거죠?”
“맞아요. 제가 직접 문학적 인간에 대해 정의한 적은 없지만 제가 생각하는 문학적 인간의 방향성은 있어요. 혹시 무슨 일 때문인 물어봐도 되나요?”
“그냥, 제가 느낀 것과 선생님이 느낀 것이 비슷한지 궁금해서요. 선생님이 가끔씩 수업 시간에 이야기해 주셨던 말씀과 연결되는 것 같아서요. 그 있잖아요.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라는 그 말씀. 혹시 맞나요?“
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글쎄요오. 이건 나중에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다른 친구들은 ‘문학적 인간’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는지 다 들어보고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는데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마무리하면서 마음 한편이 뜨끈해졌다. 시를 잘 감상하든 그렇지 않든. 시를 완성도 있게 창작할 줄 알든 혹 그렇지 않든. 나는 그저 누군가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때로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어떨 땐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화를 내기도 하는 그 마음이 참 ‘문학적’이라고 생각하거든.